한 교실에 교수님 2명

서울大 인문대 살리기 이색강좌 큰 호응
“다양한 관점 동시 공부” 교수·학생 만족
대학원식 소그룹 강의·맞춤 수업도 인기

서울대 인문대학 5동 214호 강의실. 타원형의 긴 테이블 양쪽 끝에 자리한 교수가 마주 앉은 학생 9명과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교수가 ‘2명’이다. 두 교수는 서로 코멘트를 주고받기도 한다.

“동서양의 고대에 나오는 신(神)은 왜 남자들이 많지요?(여학생)” “페미니즘(여권주의) 시각에서 보면 남신(男神) 중심이란 의문이 들겠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조현설 국문과 교수)” “네. 신의 남성(男性)성 개념은 구별해야 합니다. 서양신화에서 낮에는 남자였다가 밤에는 여자로 바뀌는 신도 있으니까요.(배철현 종교학과 교수)”

서울대 인문대가 위기에 빠진 인문대를 살리기 위해 각종 이색강좌를 개발하며 학생들에게 성큼 다가서고 있다.

그 중 한 개 강좌에 교수 두 명이 참여하는 ‘공동강의’는 교수·학생 모두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동서양 신화의 대화’를 진행하는 배철현 교수는 고대 서양신화의 권위자이고 조현설 교수는 동양의 구전(口傳) 문학 전문가다.

채성화(국문과 02학번)씨는 “공부하기 힘겹지만 두 강좌를 한꺼번에 듣는 느낌이어서 일거양득(一擧兩得)”이라고 했다. 신형욱(종교 01학번)씨는 “친구와 후배들에게도 수강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배철현 교수는 “신화란 주제를 놓고 동양과 서양 문화라는 각기 다른 과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 교수들끼리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조현설 교수는 “낯선 강의 방식이라 긴장도 많이 되지만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준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시도”라고 말했다.

서울대 인문대는 이번 학기에 ‘동서양 신화의 대화’ 이외에 ‘동서양 문학과 문화의 만남(장경렬 영문과 교수와 전형준 중문과 교수)’, ‘정보화 시대의 언어(정민화 언어학과 교수와 이성헌 불문과 교수) 등 3개의 공동강의를 개설했다.

5명 안팎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소그룹 고전원전 읽기’도 대학원식 밀착강의로 인기를 끌고 있다.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고원 독문과 교수), 두시언해(김성규 국문과 교수), 중세의 종교운동(박흥식 서양사학과 교수) 등 39개 강좌가 운영되고 있다. 이익의 ‘성호사설’을 가르치는 문중양 교수(국사)는 매주 목요일 오후 4시에 자신의 연구실에서 강의를 진행한다. 문 교수는 “학생 개개인의 장단점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가정교사처럼 수업은 물론 진로지도 등 다양하게 학생들을 보살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혜리(인문학부 05학번)씨는 “모르는 게 있으면 곧바로 질문하고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어 실력이 향상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대 인문대는 또 학생이 스스로 과제를 선정한 뒤 지도교수를 지정 받아 1대1로 공부하는 ‘독립과제 연구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교수가 강좌를 개설하고 학생을 받는 기존 수업방식과 180도 반대 개념이다. 이번 학기에는 5명의 학생이 5명의 교수에게 각각 지도를 받고 있다. 3학점짜리이지만 정해진 강의시간이 없다. 교수와 학생이 이메일로 과제와 자료를 주고받으면서 매주 약속시간과 장소를 따로 정해 진도를 체크한다.

강병철(국문과 01학번)씨는 ‘개화기 사회변동과 문학 소비층의 근대적 문화인식’을 주제로 양승국 교수로부터 지도를 받고 있다. 강씨는 “하고 싶은 주제를 잡아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고 점심식사 시간을 이용해 강의지도를 받기도 해 부담도 덜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 김영진 기자 2006-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