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벌싸움'으로 얼룩진 쇼트트랙의 영광

"이미 캐나다에서 열렸던 세계팀선수권대회부터 파벌로 나뉘어 따로 훈련했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금메달 6개, 2006 세계쇼트트랙팀선수권대회 남녀동반 우승, 2006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 금메달 7개 등 세계 최강의 한국 쇼트트랙이 쌓아올린 금자탑이 '파벌싸움'이란 악재 속에 한순간에 빛을 바래고 말았다.

4일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를 마치고 귀국한 10명의 남녀 대표팀 선수들은 입국장부터 두 패로 나뉘어 서로 다른 코치에게 마지막 전달사항을 듣는 어색한 장면을 연출했다.

더구나 입국 환영식이 벌어지는 자리에서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49)씨가 "코치와 선수들이 안현수의 1등을 방해했다"고 선수들을 호통치는 통에 환영식은 더욱 썰렁해지고 말았다.

한국 쇼트트랙은 지난해 파벌싸움 통에 종목을 없애야 한다는 여론까지 나오는 등 최대위기를 맞았다.

코칭스태프 선임문제를 놓고 선수들이 선수촌 입촌을 거부하고, 동계올림픽 대표선수 선발을 놓고 학부모측과 대한빙상경기연맹이 대립각을 세우는 등 끊임없는 불화에 몸살을 앓았다.

이 때문에 대표팀 선수들은 태릉선수촌에서 퇴촌 명령을 받고 촌외훈련의 고난까지 겪으면서 동계올림픽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일련의 모든 사건들은 쇼트트랙계를 장악하기 위한 파벌 간의 신경전에서 나온 것. 여기에 학부모들까지 가세하면서 가장 순수해야할 스포츠 판이 투서와 시기가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외형적으로 한국체대와 비(非)한국체대간의 파벌다툼으로 보이지만 속사정은 이보다 더욱 복잡하다.

과거 한국 쇼트트랙을 이끌었던 J씨와 Y씨간의 끊임없는 알력싸움이 그들의 제자들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양상의 파벌싸움으로 번지게 됐다는 게 빙상계의 정설이다.

특히 쇼트트랙은 한국 동계종목의 유일한 금메달 종목이어서 이에 따른 이권 다툼 때문에 파벌간 반목이 심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지난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도 한국 남녀 쇼트트랙 대표팀은 훈련기간에 파벌로 나뉘어 따로 훈련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연출했다.

하지만 역대 동계올림픽 최고 성적을 거두는 바람에 잠시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던 파벌문제는 지난달 끝난 세계팀선수권대회와 3일 막을 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다시 한번 불거져 나오고 말았다.

빙상연맹의 한 관계자는 "이미 세계팀선수권대회 때부터 두 패로 나뉘어 훈련했다"며 "심지어는 방까지 같은 층에서 쓸 수 없다고 주장하는 통에 갑작스레 방을 바꾸는 일도 벌어졌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돌아오는 비행기 좌석도 바꿔달라고 했을 정도"라며 "지난 2003년 말 구타파문이 있었을 때 연맹에서 파벌문제도 함께 정리했어야 했다"고 혀를 찼다.

한편 빙상연맹은 이번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지막으로 대표팀이 해체되면서 오는 9월말께 2006-2007시즌을 대비하는 대표팀 선발전을 연다는 방침이다.

빙상연맹 김형범 부회장은 "그동안의 거론된 문제점과 팀구성 문제 등을 종합해 연맹 자체에서 회의를 계속해 왔다"며 "원칙과 기준, 룰이 통하는 대표팀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벌싸움에 선수들이 희생되는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

그는 이어 "무엇보다 대표팀 지도자를 제대로 뽑는 게 가장 중요하다. 충분히 검토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 파벌이 다시 발을 붙일 수 없는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연 빙상연맹이 한국 체육의 고질병으로 자리잡은 파벌싸움에 지친 국내 스포츠팬들에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지켜볼 대목이다.

(연합뉴스 / 이영호 기자 2006-4-5)

안현수 “다 그만두고 싶다…이렇게 후회하긴 처음”

“다 관두고 싶은 생각밖에 안드네요”

한국 쇼트트랙 파벌싸움의 중심에 선 안현수가 5일 미니홈피를 통해 착잡한 심경을 밝혔다.

안현수는 “지금 너무 힘들다”며 “부끄러운 일들도 많고 아무리 참고 견뎌보려고 해도 지금은 다 관두고 싶은 생각밖에 안 든다”고 말했다.

안현수는 한국체대 선배로 평소 절친한 ‘청담동 호루라기’ 이진성의 미니홈피에도 “진짜 제 자신이 좋아서 하는 운동인데 목표를 위해서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는데 지금처럼 이렇게 후회하긴 처음인 것 같다”며 “제 전부였던 스케이트를 지금은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안현수는“파벌싸움이 너무 커져서 선수들이 많은 피해를 보는 것 같다”면서 “도대체 어쩌다 이지경까지 오게됐는지 처음 시작이 어디인지 끝은 어디일지 모르는 이런 상황에 더이상 휘말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 선수들의 견제도 모자라서 이젠 한국 선수들의 견제를 받고…같은 시간에 운동하면서도 말한마디 없이 따로 훈련하고…”라며 그동안의 심적 고충을 토로한 뒤 “언제까지 성적만으로 한국이 쇼트트랙 강국으로 살아남을지 모르겠지만 벌써 외국 선수들이 보는 한국 선수들의 이미지는 떨어질데로 떨어진 상태”라고 평가했다.

안현수는 “형도 잘 알겠지만 쇼트트랙이 굉장히 문제가 많았는데 성적이 좋아서 지금까지 잘 넘기고 버텨온 것 같다”면서 “선수 구타사건,뇌물사건 등 여러가지 일들도 많이 겪어봤지만 올 시즌만큼 힘들었던 적도 없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도 많다”고 말했다.

안현수는 또 “운동 선수로서 저의 분야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도 많은 비난을 받고,양보했다는 말을 들었다”며 “4년에 한번 열리는 올림픽에서 인생에 한번 올까말까 하는 경기에서 (누가)양보를 하냐”고 반문했다. 안현수는 “양보라는 말로 2위한 선수에게 모두가 관심가질 때 저는 금메달을 따고도 속상해했고 양보가 아니란걸 보여주기 위해 남은경기 열심히 준비했고,준비한만큼 좋은결과가 있어서 너무 좋았다”면서 “많은 분들이 저를 비난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저도 제가 할말은 해야 할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한편 안현수의 코치인 박세우씨는 4일 미니홈피를 통해 “ 아무리 생각해도 용서가 안된다”며 “지금은 힘들지만 현수가 이기는 방법밖에는 없다. 이겨도 정의롭게, 우린 그렇게 살자” 라고 말했다.

안현수의 미니 홈피를 방문한 네티즌 이모씨는 “ 우리한땐 안현수를 같이 외치면서 응원했었다 ” 고 파벌싸움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앞서 지난 4일 쇼트트랙 선수단의 귀국 환영식 도중 안현수의 아버지인 안기원씨가 “선수들과 코치가 짜고 안현수가 1등을 하는 것을 막았다. 스포츠맨십도 없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고함을 쳤으며 대한빙상경기연맹 김형범 부회장과 말다툼을 벌이다 손찌검까지 해 물의를 빚었다.

안씨는 “현수가 미국 현지에서 울면서 전화했다. 외국 선수들보다 한국 선수들이 더 심하게 현수를 견제했다. 1000m와 3000m에서 송재근 코치의 지시로 다른 파벌 선수들이 안현수를 막게 했다”고 주장했다.

<신은정 기자>

안현수가 자신의 미니홈피에 남긴 글 전문

지금 너무 힘드네요 부끄러운 일들도 많고 아무리 참고 견뎌보려고 해도 지금은 다 관두고 싶은 생각밖에 안드네요 그래도 저에게 용기와 희망 그리고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안현수가 이진성의 미니홈피에 남긴 글 전문

형∼저 오늘 도착햇어요. 기뻐서 웃어야 하는 날인데 웃음조차 어색한 날이 되었네요. 진짜 힘든 시기도 많았지만 형의 도움 많이 받으면서 잘 버텼는데..

지금은 견디기 힘들정도로 너무 힘드네요. 파벌싸움이 너무 커져서 선수들이 많은 피해를 보는 것 같아요. 진짜 제 자신이 좋아서 하는 운동인데 목표를 위해서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는데..지금처럼 이렇게 후회하긴 처음인 것 같아요. 다시한번 참고..마음을 잘 추스려보고.. 강하게 덤벼들어도 안되요ㅜ

제 전부였던 스케이트를 지금은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요. 편하게 운동에만 전념하고 싶은데.. 그러기엔 여기저기 신경쓰이는 일이 너무 많네요. 도대체 어쩌다 이지경까지 오게됐는지 처음 시작이 어디인지 끝은 어디일지 모르는 이런 상황에 더이상 휘말리고 싶지 않아요.

외국 선수들의 견제도 모자라서 이젠 한국 선수들의 견제를 받고..같은 시간에 운동하면서도 말한마디 없이 따로 훈련하고.. 언제까지 성적만으로 한국이 쇼트트랙 강국으로 살아남을지 모르겠지만 벌써 외국 선수들이 보는 한국 선수들의 이미지는 떨어질데로 떨어진 상태에요.

형도 잘 아시겠지만 쇼트트랙이 굉장히 문제가 많았는데 성적이 좋아서 지금까지 잘 넘기고 버텨온 것 같아요.

선수 구타사건,뇌물사건 등 여러가지 일들도 많이 겪어봤지만 올 시즌만큼 힘들었던 적도 없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일도 많네요.

운동 선수로서 저의 분야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도 많은 비난을 받고,양보했다는 말을 듣고.. 형∼누가 4년에 한번 열리는 올림픽에서..인생에 한번 올까말까 하는 경기에서 양보를 합니까??

모두 금메달의 욕심도 있고 다같이 힘들게 운동했는데 같은 나라 선수라고 양보가 됩니까?? 올림픽과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보여진 시합들.. 비슷한 상황이 많았지만 이번경기 몸싸움도 굉장히 많았습니다.그런데 양보라뇨..

양보라는 말로 2위한 선수에게 모두가 관심가질 때 저는 금메달을 따고도 속상해했고 양보가 아니란걸 보여주기 위해 남은경기 열심히 준비했고,준비한만큼 좋은결과가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많은 분들이 저를 비난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저도 제가 할말은 해야 할 것 같아서...

앞으로도 운동 할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더이상 힘들어지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라도 형한테 제 심정을 털어놨어요.. 형∼!!제 애기 끝까지 들어주시고 많은 힘이 되어주셔서 고마워요^^

(국민일보 200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