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판타지'에 빠져봅시다

23일부터 그래픽아트·동영상 이용한 첨단 특별전

일연(一然·1206~1283) 스님. ‘삼국유사’를 저술한 그가 올해로 탄생 800주년을 맞는다. 일연이 묻는다. 역사와 판타지의 경계는 과연 어디일까. 신라 48대 임금 경문왕(景文王).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에 나오는 바로 그 왕이다. 이런 설화도 있다. 왕의 침소에 저녁마다 수없이 뱀이 모여들어 궁인들이 두려워하자 왕은 “내가 뱀 없이는 편안히 잘 수 없다”며 아예 가슴 가득 덮고 잤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얘기일까? 이렇게 해석해 볼 수 있다. 경문왕의 왕 노릇은 순탄치 않았다. 바야흐로 신라 하대(下代)의 혼란기, 이미 급격한 소용돌이 속에 빠진 시대 속에서 그 중심에 던져진 사람은 비극적 세계관을 지닐 수 밖에 없다. 당나귀처럼 긴 귀를 가지고서도 아무도 모르게 꼭꼭 감춰야 했던 사뱀을 이불 삼아 덮고 자야 했던 사람은 자신의 고독을 오직 스스로 혼자 지고 가야 하는 이의 슬픈 초상이라는 것.

옛 이야기의 세계는 이처럼 양파처럼 겹겹이 중첩된 무궁무진한 의미들을 그 속에 끌어안고 있다. 이 이야기들의 원천은 모두 ‘삼국유사(三國遺事)’.

“정규 학교가 하지 못하는 역할을 대안 학교가 하듯이, ‘삼국유사’는 ‘대안(代案) 사서’라 할 만합니다.” 고운기(高雲基)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의 말이다. 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독특한 구성과 필치를 통해 다른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 고대사의 중요한 사실과 문화, 풍부한 이야깃거리와 영감을 담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의 결합으로 나라가 생겨났다는 단군신화, 풍랑으로 외적을 물리친 마법의 세계 만파식적, ‘거북아 거북아’노래가 등장하는 수로부인의 몽환적인 이야기…. 1000년을 훌쩍 뛰어넘어 끝없이 펼쳐지는 상상력과 판타지의 세계가 바로 그 책에 있는 것이다.

현암사와 연세대 국학연구원이 오는 23일부터 다음달 24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여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특별전’은 그래픽 아트와 사진, HD 동영상, 컴퓨터 아트와 같은 첨단 전시 기법을 동원해 ‘삼국유사’의 세계를 체험하는 보기 드문 전시회다. 하늘나라, 신시(神市), 동굴, 결혼이라는 네 개의 미로방을 통해 단군신화의 세계로 떠나고, 별자리를 탐험하면서 고구려의 건국신화를 쫓아간다. 사진작가 양진(梁鎭)씨가 찍은 현장 답사 사진들에서는 여전히 이 땅에 남아있는 ‘삼국유사’의 흔적들과 만날 수 있다. (02)365-5051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2006-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