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위에 군림하는 中 사법제도…고문·강제자백 밥먹듯
중국의 범죄수사는 거의 대부분 용의자를 유죄로 결론지으며 검찰은 패소라는 단어를 모른다. 용의자 고문을 통해 강제 자백을 얻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강제 자백에 근거한 잘못된 유죄판결 사례가 속속 폭로돼 중국 사법제도의 심각한 결점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이 21일 보도했다. 지금 사법제도는 중국 현대화를 향한 투쟁의 최전선으로 “정권이 법을 위해 복무할 것인가,
아니면
관행대로 법이 정권을 섬길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씨름하고 있다.
◇ 피해자들의 기막힌 사연 = 1998년 8월 허난성 안양시 인근 농촌마을에서 지아하이롱이라는 30대 여성이 강간 살해된 채로 발견됐다. 현지
경찰은 다른 물증을 무시하고 아이들의 목격담만 듣고 금속공장 노동자인 친옌홍(35)을 체포했다. 그는 무슨 일 때문에 붙잡힌 지도 모른 채 3일
밤낮 동안 ‘호랑이 의자’ ‘비행기 타기’ ‘돼지 돌리기’ 등 갖은 고문을 받았다. 고통을 견디다 못한 그는 4일째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을
자백하고 말았다. 결국 사형선고가 내려져 죽을 날만 기다리던 그에게 갑자기 기적이 일어났다. 2001년 1월 한 퇴역군인이 제발로 경찰서를
찾아와 지아하이롱을 포함한 18명의 살해 사실을 자백한 것이다.
그러나 문책을 두려워 한 현지 사법당국은 사건을 대충 덮으려 했고, 한 언론인이 윗선에 이 사실을 알린 뒤에야 2002년 3월 친옌홍은
풀려날 수 있었다. 이후 친씨는 당국과의 협상으로 3만5000달러에 달하는 피해보상금을 받았는데,
여기에는 이번 일을 언론에 알리거나 고위층에
추가 보상금 탄원을 해서는 안된다는 단서가 붙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까지 자신의 혐의가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사실에 격분,
침묵을 깨고 최근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은 올해에만 10건 넘게 발생했다. 아내 살해 혐의로 11년간 수감됐던 서샹린(42)은 죽은 줄 알았던 부인이 살아서
집으로 돌아온 직후인 지난 4월 석방됐다. 그의 아내는 부부싸움 뒤 가출한 것인데 경찰은 저수지에서 발견된 시신을 서샹린의 아내로 단정한
것이다. 만신창이가 된 채 풀려난 서샹린은 “온갖 고문과 인간적 모독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 더디기만 한 사법제도 개선 = 중국의 형법에는 엄연히 고문을 금지하며 용의자 자백보다 물증을 우선한다고 써 있지만,
강제 자백은 ‘사회
안정’을 무엇보다 우선하는 분위기 속에서 지방 특유의 관행으로 존속되고 있다.
형법을 만인에게 적용되는 객관적인 규범이라기보다 왕권의 확장으로 여기는 역사적 전통도 장애물이다. 이 전통에 따르면 자백은 권위에 대한
복종인 반면, 무죄 탄원은 반역의 일종이다. 특히 당 왕조 시절 사법제도에 따르면 유죄판결은 자백을 거쳐야만 인정됐다.
사법제도 문제의 심각성이 수년전부터 대두되자 일부 고위 관리와 법률가들이 용의자에게 묵비권이나 조사단계에서 변호사 선임권을 주는 등의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일선 경찰들이 완강히 반대하는 등 진척은 더디기만 하다. 법적인 이의 제기도 고위 관료나 중요 정부기관만 할 수
있도록 선을 그어놓았다. 이 때문에 농촌의 불만세력이나 신흥 부유층 기업가들의 법적 권리 합리화 요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민일보 / 천지우 기자 200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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