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 연변서 온 유학생
말이 많던 BK21 1단계 사업이 내년 2월에 종료되고 이어서 후속사업이 시작될 전망이다. 그동안 소수의 대학이기는 하나 참여 사업단의
대학원생들에게는 전례없는 안정적인 지원이 이루어졌고, 앞으로 이러한 지원이 보다 확대되면 선진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부담없이 이공계 대학원
공부를 하는 여건이 마련될 것이다. 그런데 이 사업은 또 다른 작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본인이 속한 서울대 화학분자공학사업단에서는 최근 중국의 조선족 자치주 옌볜의 옌볜대학 및 옌볜과학기술대학과 교류협정을 맺고 학술교류를 하는
한편 각 대학에서 매년 두세 명씩 우수 학생을 대학원 장학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학생들에게는 한국 유수의 대학 유학이 꿈이지만 장학금
없이는 그야말로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었는데, BK21 사업의 일환으로 그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중국의 조선족 학생들은 정서적으로 미국에 대해 별로 호감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같은 뿌리를 지닌, 그리고 경제적으로 놀라운
발전을 이룩한 한국 유학을 원한다고 한다. 요즘 한류 열풍도 한몫했을 것이다.
BK21 종료로 학비조달 막막
벌써 30년이 지난 일이지만 우리 세대는 200달러를 들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보다 몇 년 전에는 단돈 50달러만 가지고 나갔다고
한다. 그래도 대부분 이공계의 경우에는 대학에서 주는 조교장학금을 받아 그 돈으로 정착하고, 장학금으로 학위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매년 몇
만달러씩 들여가며 외국 중·고등학교에 유학을 보내는 요즘과는 격세지감이 있지만 아무튼 그때는 국내의 연구 여건이 열악했기 때문에 외국 유학이
그만큼 절실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외국 유학생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서울대를 위시해서 국내 유수의 대학들이 우수한 조선족 유학생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들이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학생들보다
‘헝그리’ 정신이 투철하다는 점이다. 지난달에 옌볜과기대를 방문했을 때 한 옌볜 출신 학생이 한여름 날씨인데도 검은색 양복에 넥타이까지 맨
정장차림으로 찾아왔다. 내년 2월에 학부를 졸업하고 봄 학기부터 내 연구실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겠다는 이 학생은 공부를 무리하게 하다가 눈이
상해 수술까지 받았다고 한다.
옌볜과기대 교수님도 서울대에서 박사 공부까지 마치면 돌아와 큰 지도자가 될 사람이라고 기대가 컸다. 이 학생의 학업에 대한 자세는 너무도
진지하고 순수해서 30여년 전 맨손으로 유학을 떠나던 시절을 생각나게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옌볜에서 의사로 일하시지만 중국에서는 의사와 택시
기사의 수입이 별 차이가 없어서 서울대 등록금이 크게 부담이 된다고 한다.
요즘 중국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조선족 자치주에 중국인을 대거 이주시키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조선족이 옌지시 인구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고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언젠가 조선족 자치주도 사라질 운명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장차 옌볜지역에서 조선족의 지도적
역할을 할 인물들이 성장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과학기술 역량을 향상시키는 것에 버금가게 의미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해외동포 인재 발굴·육성을
요즘 국내의 유수한 장학재단에서는 해외에 나가 공부하는 유학생에게 수만달러 수준의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그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나는
정부나 기업 차원에서 중국, 러시아 등지에 흩어져 있는 우리 민족의 후손들을 위한 장학 제도를 대폭 확대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국내 대학원 등록금과 생활비는 우리나라 학생들에게도 큰 돈이지만 중국의 조선족 학생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액수다. 우리로서는 얼마 안되는
돈으로 해외에 있는 동족 중에서 인재를 발굴해 육성하고, 우리나라의 발전상을 홍보하고, 아울러 우리의 부족한 이공계 연구 인력을 보강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김희준 / 서울대교수·객원논설위원> (경향신문
2005-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