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으로 점철된 중국을 위한 변명
김택민씨, ''중국역사의 어두운 그림자'' 출간
지금 ''중국''(中國)이라고 하면, 지리적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민국가의 독점적 지배력이 미치는 특정 국경(boundary) 안쪽을 말하지만, 역사적으로는 황허(黃河) 유역을 지칭하는
경우가 압도적이다.
그래서 이 지역을 중원(中原)이라 하며, 이곳은 전통적인 중화(中華) 문명의 중심지로 간주되곤
했다.
한국인은 흔히 한국역사를 ''반만년''이라 범주지으면서, 고난과 역경과 투쟁으로 점철된 역사라고 하고, 나아가 중국에 대비해
중국이 주는 끊임없는 고난을 간단없이 견뎌내고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지만, 중국사 전공인 김택민 고려대 사범대 교수에게는 이런 식의 이해는 매우
잘못됐다.
김 교수에 따르면, 중국의 한국 침략만 해도 한 무제(漢武帝)의 고조선 침략과 당 태종과 고종의 백제.고구려 침략 등 단
두 번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중국의 침략이라고 알고 있는 나머지는 몽고족이나 여진족 등의 북방 유목민족의 침략을 말할
뿐이다.
그래서 김 교수는 조금은 역설적인 어조로, 나아가 종래의 막연한 상식에 바탕을 둔 우리의 잘못된 한국사 인식을 조롱하는
듯한 어투로 한국이야말로 이 지구상에서 복 받은 민족이었다고 생각한다.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반도에 위치하기 때문에
외침을 많이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主) 전쟁터에서 벗어나 있어 전화(戰禍)를 덜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내부적으로도 이렇다 할
내란도 많지 않았다."그렇다고 "뭐 저런 사람이 있느냐"는 식으로 반응할 필요가 없다.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이유도 없을 뿐더러,
중국이 겪은 역대 전란과 참상과 고난에 비하면 한국은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을 강조하기 위한 필법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국사에 자긍심을 가져도 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최근 선보인 그의 단행본 ''중국역사의 어두운 그림자''(신서원)는 고난으로 점철된
중국을 위한 변명이자, 그런 고난을 겪고 지금에 이른 중국에 대한 헌사(獻辭)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김 교수는 가뭄과 홍수,
메뚜기떼에 의한 자연재해, 내란과 대동란, 이민족의 침략에 의한 대량살육과 인구소멸, 반란에 뛰어든 호걸들의 성공과 좌절, 나아가 이를 통해
중국인들의 가치관을 들여다 보고자 했다.
다소 특이한 대목은 식인(食人) 사건에 대해 별도의 장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 먹는 식인. 그런 일이 한국사에도 있었다는 형적이 있기는 하지만, 중국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오죽하면 사람을 잡아 먹어야
했을까.
김 교수에 의하면 중화문명 중심지인 황허 유역은 문명의 땅이면서 동시에 재해의 땅이었다.
황허 범람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600년 경에 처음 보이기 시작한 이래 1950년까지 약 2천500년 동안 무려 1천900번에 걸쳐 크고 작은 범람을 기록했다.
후한시대 이후 당말기까지는 22.4년에 한 번꼴로 범람했으며, 당대에는 18년에 한 번꼴로 중원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또 그에
버금가는 가뭄이 있었으니, 심지어 7년 동안이나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아울러 펄 벅의 ''대지''라는 소설로 익숙한
메뚜기떼에 의한 공습은 그야말로 시도 때도 없었다.
이에 더해 툭하면 이민족에게 침략받아 곤욕을 치렀는가 하면, 또 걸핏하면 반란과
내란에 중국은 쑥대밭이 되곤 했다. 그리하여 먹고 살기 위해 사람까지 잡아먹는 일조차 빈번하게 발생했던 것이다.
이런 처참한
중국사의 이면들을 들춰 내고는 김 교수는 묻는다. "이러고도 중국이 과연 영광의 땅이겠는가? 이런 중국에 견주어 우리가 더 고난받은 민족이라고
하겠는가?"하지만 김 교수가 이 책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은 "그래서 중국은 불쌍하다"가 아니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중국을 더욱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런 고난과 역경을 견디고 지금에 이른 저 중국, 연평균 8% 고도성장을 거듭하면서 조만간 일본을 앞지르고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는 슈퍼 제국 중국에 한시라도 ''감시''와 ''주시''의 눈을 떼어서는 아니된다는 것이다. 476쪽. 1만5천원.
(연합뉴스 / 김태식 기자 200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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