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는 누구도 승리할 수 없다”

미국에서 반전 촛불시위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전세계 언론들은 미국의 50여 개 주 1천6백여 곳에서 6만여 명이 참여한 촛불시위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라크 전에서 아들을 잃어버린 신디 시핸이 부시 대통령이 휴가를 보내고 있는 목장 앞에서 벌인 1인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번진 것이다.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여성이 휴가 중인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하며 주장한 내용은 “이라크 주둔 중인 미군의 철수”였다. 그녀가 내세운 논리는 ‘모든 사람의 생명은 귀중하다’라는 아주 간단명료한 명제다.

미국의 정치경제를 설명하는 거시적인 논리가 아니라, ‘모든 생명은 귀하다’는 메시지가 지금 미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생명 논리’는 ‘전쟁 논리’와 정면으로 대치된다. 사람의 생명의 값어치가 땅에 떨어지는 것이 전쟁이다. 사람들의 죽음이 그저 숫자로만 계산된다. 지난 2년 동안 이라크 전에서 사망한 미군의 수는 1천6백여 명, 부상자는 1만5천명에 달한다고 한다. 1명에 불과한 숫자의 죽음이, 그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하는 사람에 의해 평화의 이름으로 다시 기록되고 있다. 생명과 평화의 논리는 슬픔을 함께 느끼는 것이고 고통 받는 누군가의 옆에 조용히 서는 것이다.

한편,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이라크에서의 민간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바라보자. 지금 이라크에서 미국에 의한 침공과 지배로 인해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이 죽고, 피해를 입고, 고통 받고 있는지 현재로선 파악되지도 않는다.

“이 전쟁에서 승자는 없습니다. 미군도, 저항군도 어느 쪽도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 잃었죠. 사람들이 죽었으니까요.”

지난해 5월, 이라크에서 미군에 의해 수많은 민간인 피해가 났던 팔루자를 방문했을 때, 아들을 잃은 팔루자의 여성 누리아 아비드(Nouria Abid, 40세)가 한 말이다. 그녀는 8명의 아이들의 어머니였고, 25살 난 큰아들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비드는 “미군들이 우리 석유를 다 가져가고 싶으면 그렇게 하더라도, 제발 우리를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둘째 아들 아퀼(23세)이 “누가 그걸 허락합니까? 그것은 이라크의 재산이고, 이라크 사람들 것입니다”라고 따져 물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가족을 잃은 슬픔이 무엇보다 컸으며, 그 당시 정신적 충격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의 면담 중에도 “살아 갈 희망이 없다. 죽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 했고, 면담이 끝나고 식음을 전폐하다가 며칠 후 숨을 거두었다. 장례식 날에야 그녀가 미군의 폭격과 가족을 잃었을 때 받은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듣게 됐다.

당시 이라크 언론들이나 서방 언론들은 미군과 저항군과의 20여 일이 넘는 전투에서 미군이 패했고, 저항군이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팔루자 저항군 또한 “팔루자를 끝까지 지켰다”며 전투가 끝난 직후 승리의 축포를 터트렸다. 그러나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누구도 승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들에게 전쟁의 승리라는 것이 있을까?

그간 전쟁의 역사에서 민간인들의 죽음은 주요하게 기록되지 않았다. 역사책들은 전쟁에서 누가 이기고 졌는지, 누가 전쟁을 통해 권력을 얻었고 누가 권력을 잃게 되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정치영역과 경제적인 손실을 따질 때에도 민간인의 죽음에 대한 가치부여가 없었고, 민간인들의 받은 피해와 고통에 대해 간과해왔다.

그러나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로선 국가가 전쟁에서 이겼냐, 졌냐의 문제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이, 가족과 이웃의 죽음이 그 무엇보다도 중하고 슬프다. 전쟁에서 승리와 패배는 권력자들의 얘기일 뿐이다. 전쟁에서 승리의 기쁨이라는 것은 민간인들의 죽음을 기록하지 않는 역사 기록자들과, 전쟁을 통해 고통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국익론이나 국가주의 논리 또한 전쟁을 통해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소수 지배자와 권력자들에게 해당하는 얘기다. 전쟁을 일으킨 국가의 시민이나 전쟁터에서 살고 있는 민간인 피해자들 양자에게 통하는 진실은 ‘전쟁을 통해 어떤 누구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전쟁에서 승패는 없다”고 말했던 누리아 아비드의 슬픔과 “모든 생명은 고귀하다”며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신디 시핸의 비폭력 시위는 맞닿아 있다.

우리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이 현실 앞에서 진정으로 슬픔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가 고통 당하고 있는데도 고개를 돌려버리고, 슬픈 것을 보고도 슬퍼하지 않는 우리의 잔인한 모습에 진정 슬퍼해야 한다. 24살 난 아들을 잃은 신디 시핸의 슬픔이 미국 전역으로 강물처럼 흐르기를 빈다. 또한 가족들을 잃고 고통 당하고 있는 이라크 사람들의 슬픔을 보면서도 아직도 이라크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대한민국에도 그 슬픔이 흐르기를 기도한다.

(일다 / 윤정은 기자 2005-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