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변방'에서 구출한 '역사공동체'

"고구려사 귀속논쟁은 애국의 전쟁놀이"
김한규 서강대 교수, '천하국가' 출간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제공하는 김한규(金翰奎.55) 서강대 사학과 교수의 이력서를 보면 전공은 '중국고대사'로 기록돼 있다.

부산여대 전임강사 재직시절인 1981년 서강대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이 '한대(漢代) 중국적 세계질서 연구'이니 중국고대사 전공임은 부인하기 힘들다.

이화여대 사범대학 교수(1982-1985)를 거쳐 1985년 12월, 그 해 정년퇴임한 전해종(全海宗) 교수 후임으로 모교에 부임한 이후에는 연구영역을 동아시아 전체로 넓혀가기 시작했다. 이는 1997년 '동아시아 막부(幕府) 체제 연구'로 나왔다.

일본사만의 전매 특허로 알기 쉬운 막부(幕府)를 동아시아적 맥락에서 접근해본 시도였던 셈이다. 하기야 막부(幕府)라는 말 자체도 고대 중국의 산물이다.

이런 그가 1999년에는 '한중관계사'(아르케. 전2권)라는 묵직한 연구서를 들고 나왔다. 제목만으로 보면 스승인 전해종 교수의 그것을 빼다 박았다. 하지만 그 접근방식은 중국과 역대 한반도 왕조간 관계를 조공(朝貢)과 책봉(冊封)이라는 양대축으로 이해한 전 교수와는 달리 그의 한중관계사는 중간 접점 지대를 설정하고 있다.

그의 역사학은 '국가'를 해체하는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서 말하는 국가는 20세기 이후의 국민국가(nation-state) 이기도 하면서 전통 왕조시대의 국가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김 교수는 후자를 향한 전자의 지배욕망을 끊어 버리려 안간힘을 쓴다. 즉, 현재의 국민국가 영토와 그들의 '기억'을 기준으로 삼은 과거 역사에의 '귀속(계승) 욕망'을 끊임없이 단절하려 한다.

한국사와 중국사, 그 접점지역에 '요동'이라는 별도의 '역사공동체'를 설정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그에 의하면 요동은 한국사의 영역도 아니요 중국사의 영역도 아닌 제3의 '역사공동체'이다. 그 중심에는 말할 것도 없이 고구려가 위치하고 있다.

그는 고구려사 영역 상당부분이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영토에 포함돼 있으며, 과거에도 중원 왕조들에게 조공과 책봉을 받았다는 이유로 그 역사를 자국사 영역으로 편입시키려 하는 현대 중국의 내셔널리즘을 반대한다.

나아가 그와 거의 똑같은 논리로 고구려를 고려사를 구성한 3대 주축의 하나로 거론한 삼국사기를 들먹이며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는 당연히 한국사에 속한다는 한국의 내셔널리즘적 역사학도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전쟁놀이"로 본다.

이런 생각을 다시 정리한 결과물이 '요동사'(문학과지성사. 2003)였다.

이와 똑같은 방식을 그는 티베트에도 적용했다. 즉, 티베트 또한 중원과는 다른 독특한 역사공동체라는 시각으로 해체하고자 했다. 그 지역에 대한 지배를 당연시하는 현대 중국의 논리는 물론이고, 티베트는 역대 중국왕조에서 맞서 '자주적'인 왕조였고, 때로는 그에 맞서는 '강대한 제국'이었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티베트 지역의 지배적인 역사학도 거부하면서 말이다. '티베트와 중국'(2000.소나무)에 이은 '티베트와 중국의 역사적 관계'(2004.혜안)는 그의 이런 생각을 집약하고 있다.

요동과 티베트는 현대 중국의 관점에서 보면 '변강'(邊彊)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결국 그가 지금껏 전개하고 있는 변강의 역사학, 그 목표점은 사실 간단하다.

너무 단순화한 느낌이 없지 않으나 변강은 중국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변강은 변강 나름대로 그 지역만의 독특한 지역적ㆍ문화적ㆍ역사적 전통이 있다는 것이다. 이 전통의 뭉치를 그는 '역사공동체'라는 말로 개념화화고 있다. 이 역사공동체를 국가라는 틀로 묶을 수 없다.

최근에 선뵌 그의 또 다른 저서 '천하질서'(부제 '전통시대 동아시아 세계질서'. 소나무)는 지금의 중국 영토 '변방'을 더욱 세분했다. 요동과 티베트 외에도 '초원유목 역사공동체', '서역 역사공동체', '강저 역사공동체', '만월 역사공동체', 대만 역사공동체'를 설정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주(周) 왕조 이래 청(淸)나라에 이르기까지 역대 중국 왕조가 그들이 중심으로 설정한 세계질서를 어떻게 구축했는지, 즉, 무엇을 기준으로 어떤 지역을 '중국'(中國)으로 규정하는 한편 그 외 사방을 '만이(蠻夷)의 권역'(변강)으로 갈랐는지를 기록을 통해 엿보고 있다.

그가 이렇게 설정한 역사공동체를 1장의 동아시아 지도로 표시한다면? 이들 변강의 역사공동체가 떨어져 나가고 남은 소위 '중국 역사공동체'는 황허(黃河) 유역 일대밖에 남지 않게 된다.(유감스럽게도 김 교수는 이런 지도를 첨부하지 않았다.)

이런 지도를 본다면 '하나의 중국'을 주창하는 중국의 민족주의자들은 아마도 경악을 금치 못하리라.

요컨대 김한규 역사학은 적어도 2천 년 이상 동아시아 질서를 구축해 온 '중국'이라는 거대한 심장부를 향해, 그런 '중국'이 '변강'으로 내친 주변부 여러 '역사공동체'를 강력한 쇠뇌로 삼아, 사방에서 해체의 화살을 쏘고 있다.

이렇게 이해하면, 한국사임이 당연한 고구려나 발해의 역사를 한국사의 영역에서 떼어내 요동이라는 정체불명의 괴물에 내어다 줌으로써 결국은 고구사가 중국사의 영역이라는 중국측 주장에 동조하고 만 셈이라는 국내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의 그를 향한 비난이 얼마나 부당한지를 알 수 있다.

(연합뉴스 / 김태식 기자 2005-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