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외국인 배척보단 힘 길러야

국제적으로 유명한 폭력 전과자(일본)와 덩치가 엄청나게 큰 거구(중국)가 피 튀기는 싸움을 하고 있는데 비쩍 마르고 체구도 작은 소년이 그 싸움을 말리겠다고 나서면 잘 될까? 그 녀석 기특하고 용기 한번 가상하다고 고개를 끄덕여 줄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구경꾼들은 웃을 것이다.

참여정부 책사들은 그러나 한국이 더 이상 왜소한 소년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 같다. 100년 전엔 역사의 낙오자였지만 이제는 중국과 일본의 충돌을 막을 정도로 힘이 있다며 동북아 균형자론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 현실은 매일경제신문과 부즈앨런&해밀턴이 97년 비전코리아 보고서를 통해 밝힌 '(중국과 일본의)호두까기 속에 끼인 신세'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로 한ㆍ일간에 한바탕 설전이 오가더니 이제는 중국이 나서서 일본을 질타하며 싸움판이 엄청 커졌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세계 저명 언론들은 중ㆍ일간의 싸움을 크게 보도하면서 아시아 안보 상황에 대한 염려까지 표명한다. 한국으로서는 중국을 편들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 스스로 얼마전 고구려 역사를 자기 나라 지방정부의 역사라고 우겨댄 왜곡의 장본인이었다.

중국과 일본의 군사력 앞엔 한국은 어린애일 뿐이다. 동해에 나타난 일본의 이지스함이나 F-15 최신예 전투기 앞에 한국의 구축함이나 팬텀기들은 구식 소총 이나 다름 없다. 우리 공군이나 해군은 예산이 없는데 별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한다. 결국 경제력 문제인 것이다.

한국이 중ㆍ일의 호두까기 압박에서 벗어나는 길은 어떻게 하면 전국민이 단합해 하루속히 경제 선진국에 진입하느냐 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또 일본과 중국 또는 미국을 잘 요리할 수 있는 유능한 지도자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아직도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군부의 힘으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씨는 차지하더라도 권력을 승계한 노태우 씨는 88올림픽을 국력 신장 기회로 활용하지 못했다. 일본이 64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고공 행진을 했던 것과 달리 한국은 사회 각층의 욕구가 분출되면서 인건비 급상승 등 성급한 나눠먹기 시대에 돌 입했다.

세계 부자나라 클럽(OECD)에 가입하겠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욕심은 한국의 기초체력(fundamentals)에 걸맞지 않은 원화 강세, 외환ㆍ자본시장의 과잉 개방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아시아 외환위기의 희생양이 됐다. 허세 부리다가 나라 망한 꼴이 됐다.

온 국민 금 모으기의 정성과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을 외환위기에서 건져냈지만 엄청난 국부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외환위기에 빠진 한국을 외국 큰손들은 돈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십분 활용하면서 한국 부동산과 주식을 사모았다. 이젠 웬만큼 좋은 회사들은 외국인 투자가 지분이 50 ~60%을 웃도는 상황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과거 정권의 잘못을 이제라도 바로잡겠다는 의욕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국가 안보적으로도 이젠 고쳐서 자주외교 자주국방을 해야 한다는 사고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금융감독위원회가 국내외 투자가가 특정 기업 지분 5% 이상을 살 경우에는 내용을 보고하도록 한 5% 룰이나 국세청의 외국 펀드에 대한 세무조사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떼돈을 벌고 세금은 선진 금융기법을 동원해 이리저리 피해가는 외국인들에 대한 나쁜 국민감정도 반영된 것 같다.

그러나 정작 가장 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자칫 한강에서 빰 맞고 엉뚱한 곳에서 분풀이하는 격이 될 수 있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왕창 돈을 번 것은 그들은 영리했고 경험이 많았으며, 우리는 경험이 없고 무지했기 때문이다.

대학생과 초등학생이 산수 시합을 벌였던 것이다. 외국인투자가들이 가르쳐준 기법과 규칙을 따라 시합을 하다보니 자연히 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외국인들이 하는 것은 무조건 투명하고 올바른 것으로 그러나 국내 기업이나 금융기관 또는 펀드가 추진하는 것은 불투명하고 뭔가 냄새나는 것으로 몰아붙였던 게 바로 우리 정부였다.

쓸 만한 기업이나 금융기관은 우선적으로 외국인에 넘긴 것이다. 외환위기라는 숨 넘어가는 상황에서 제일은행을 매각한 것은 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외환은행을 굳이 수의계약까지 하면서 서둘러 싼 값에 팔아치운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우리측 잘못도 다시 한번 되짚어 보고 제2, 3의 외환은행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지 외국인 배척론으로 확산되면 곤란하다. 뉴브리지캐피털이 제일은행을 사지 않고 만약 삼성전자를 샀다면 1조원이 아니라 5조~10조원 이상을 벌었을 수 있다.

지금 우리는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우리에게 지식과 힘이 축적돼야 미국 대신 중ㆍ일 싸움도 말리고, 미국 유럽계 자본과 제대로 경쟁할 수 있을 것이다.

<장용성 편집담당 상무>

(매일경제 2005-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