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비평] 민족주의인가 탈민족주의인가
한민족의 다수가 한반도를 넘어서서 새로운 삶의 터를 찾았던 곳으로 첫째는 만주였다.
만주는 오늘날 중국 동포가 사는 공간의 일부이기도 하다.
또한 만주는 고구려의 옛 영토이자 삭풍한설 속 고난에 찬 독립투사들의 흔적이 서려 있는 곳이다.
한편 중국에서 만주는 폐기되어 버린 역사적 용어이다.
일본인들에게 만주는 대륙을 호령하던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혹은 중국이나 일본이 이렇듯 각각 다른 모습으로 뇌리에 떠올리는 만주는 어떤 형상인가. 우리는 어떠한 메커니즘을 통하여 이러한
만주의 이미지를 뇌리에 간직하게 되었는가. 이 점의 구명에 초점을 맞춘 국제학술대회가 이달 초 동아대학교에서 열렸다.
만주학회 주관으로 개최된 '동아시아 역사와 기억 속의 만주' 라는 학술대회가 그것이다.
이 학술대회는 만주국 혹은 만주에 살았던 주민의 실상이 어떠했는가를 살피는 것이 아니었다.
대신 한국인이나 중국인 혹은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만주의 이미지가 문학작품이나 교과서 혹은 역사기록을 통하여 어떤 과정을 통과하면서
사실과 감정이 기억되고 혹은 망각되었는가를 물었다.
그런 점에서 이 학술대회는 기억의 고고학이라 이름 붙일 만하다.
교과서와 관련된 연구에서는 만주가 원초적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공간이었고 그 결과 감성적 만주상
만이 박제된 채로 유통되었다고 지적했다.
안수길의 '북간도'를 분석한 논문은 안수길이 체험한 만주의 기억이 광복 이후에는 민족주의에 짜맞추어져 부조화를 낳았다고 진단했다.
이 학술대회의 특징은 해외의 정상급 저명학자가 초청되어 함께 토론하고 발표한 점이다.
두아라는 민족을 중심으로 한 근대중국사의 해체를 시도한 인도계 미국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일본이 자신과 유사한 국가구조를 창출한 것이 만주국이며 위계적 가족국가이데올로기로서 만주국을 통제한 점에서 제국주의의
새로운 원형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오늘날의 미국-이라크 관계까지 연장시켰다.
개번 맥코맥의 논지는 명쾌했다.
그는 1930년대 일본 중심의 동아시아 신질서 구축에서 지녔던 만주의 위상을 21세기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속에 가지는 북한의 위치에
비견하면서, 미국이 세계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 김정일 정권은 필요요소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 학술대회의 발표자는 거의 예외없이 민족주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입장에서 일치한다.
이 학술대회 이후 일주일 뒤 개최된 대한 중국학회 학술대회에서는 '중국학 연구의 방법과 방향성'을 공동 주제로 삼았는데,이 자리에서 한
중국문학 전공자는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고전문학을 계승하기를 주문하여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민족주의인가 탈민족주의인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던져지는 질문의 하나이다. (부산일보 200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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