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수대첩 승리로 이끈 을지문덕 장군
‘출렁이며 흐르는 저 푸른 살수에
/ 수나라 백만 대군 장사 지냈지. / 낚시꾼 나무꾼들 신나는 말이
/ 그까짓 대국 놈들 별 것 아니로구나!’ 조선을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운 조준이 청천강이 내려다보이는 누각에서 명나라 사신 축맹과 더불어 술을 마시며 지은 시입니다.
조준은 이 자리에서 옛날 조선의 조상인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 명나라의 조상인 수나라 백만 대군을 물리친 살수대첩을 시로 읊어, 큰
나라라고 우쭐대는 명나라가 조선을 얕잡아 보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대군을 물리친 살수대첩은 우리 역사에서 큰 자랑거리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서도 영양왕과 을지문덕 장군에게 제사를 지내며 자랑스런 조상을 잘 대접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살수대첩이 일어난 과정을 알아 보고 고구려가 어떻게 수나라를 이길 수 있었는지를 살펴볼게요.
▲ 수나라 등장으로 고구려에 큰
위기 닥쳐
광개토태왕이 임금에 오른 후 고구려는 몽골 초원의 유목제국, 양자
강 이남의 한족 왕조, 황하 유역의 선비족 등이 세운 호족
왕조와 더불어 동아시아의 4대 강국으로 번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 년 동안이나 평화롭던 고구려에게 위기가 닥쳤습니다.
바로 581년 건국한 수나라의 등장이었습니다.
수나라의 문제는 양자 강과 황하 유역의 북제, 진 등을 통합해 강력하고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게다가 유목제국인 돌궐마저 굴복시켰습니다.
한 나라가 지나치게 강해지면, 주변의 나라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고구려도 마찬가지로 수나라로 인해 큰 위기 의식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수나라와 전쟁을 해야만 할 것이라면, 앉아서 기다릴 필요가 없겠지요. 고구려 영양왕은 598년 자신이 직접 말갈 군사 1만을
거느리고 수나라의 동쪽 전진 기지인 영주를 공격했습니다.
수나라는 즉시 30만 대군을 동원해서 고구려를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고구려군은 수나라 군대가 요하에 이르지 못하게 만드는 등 적을 물리쳤습니다.
마침내 598년 고구려와 수나라의 1차 전쟁은 고구려의 승리로 끝났고, 수나라의 문제는 더 이상 고구려와 전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수문제와 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수양제는 온 세상이 자신의 발 밑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야심가였습니다.
그는 대운하를 건설했으며 만리장성을 보수하는 등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 수양제의 대군을 청야 전술로 크게 무찔러
그런 그에게도 한 가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고구려였습니다.
마침내 수양제는 612년 무려 113만 3800 명의 대군을 동원해 고구려를 공격해 왔습니다.
아버지가 못 이긴 고구려를 이기겠다는 욕심, 고구려를 굴복시켜 천하의 지배자가 되겠다는 야망이 전쟁을 일으키게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고구려는 요하 전투ㆍ요동성 전투ㆍ평양성 전투 등에서 수나라 군대를 계속 격파했습니다.
수양제는 화가 나서, 정예병 30만 5000 명으로 하여금 곧장 고구려 수도인 장안성을 공격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이 때 수나라 정예병을 대적한 사람이 바로 을지문덕입니다.
그는 적의 군량이 부족해 상당히 지쳤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적과 싸우며 지는 척을 했습니다.
대신 수나라 군대가 가는 길에는 식량을 한 톨도 얻지 못하게 들판을 비워 두는 청야 전술을 폈습니다.
즉, 수나라 군대가 지나는 지방의 모든 시설과 양식을 불태우고 고구려인을 대피시켰던 것입니다.
수나라 군대는 고구려의 꾐에 빠진 줄 모르고 계속 깊숙이 진격해 왔습니다.
하지만 군량 보급이 안 되고 또 현지에서 식량도 얻지 못하자 수나라 군대는 고구려 수도 인근에 이르러 지치고 말았습니다.
그제서야 꾐에 빠짐을 안 수나라 군대가 후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을지문덕 장군은 총 공격을 명령했습니다.
고구려군은 도망가는 적들을 살수(지금의 청천강)에서 거의 전멸시켰습니다.
30만 5000 명 가운데 살아 돌아간 병사가 겨우 2700 명뿐이었습니다.
세계 전쟁사에서 이 같은 대승은 쉽게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 살수대첩은 고구려인 모두의 정신력 승리
살수대첩의 결과 수나라는 크게 패했습니다.
이후 613년과 614년에도 30만 명의 군사를 보내 고구려를 공격했지만, 역시 이기지 못했습니다.
수나라는 결국 고구려 공격의 실패로 인해 멸망의 길로 들어섭니다.
이처럼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은 우리 역사에서 길이 남을 큰 승리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살수대첩에서 쓴 청야 전술이 고구려 사람들이 서로 믿고 적을 돕지 않아야 승리할 수 있는 작전이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배신자가 생겨 수나라 군대가 식량을 구할 수 있었다면, 고구려는 결코 이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고구려가 수나라를 이긴 것은 을지문덕 장군만의 공이 아니라 적을 물리치겠다는 강한 정신력을 지닌 고구려인 전체의 승리였던 것입니다.
<김용만 / 고구려역사문화연구소장>
(소년한국일보 200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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