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中의 ''역사왜곡 중단'' 믿었단 말인가
중국이 지난달 우리 정부와의 합의를 통해 다짐한 “정부 차원의 고구려사
왜곡은 없을 것”이란 약속은 여지없이 깨졌다. 중국 정부 산하기관에서 중문판과 영문판으로 발간, 세계 180여개국에 배포하는 홍보 잡지에
‘고구려는 중국 동북지방의 고대 소수민족 정권’이라고 게재한 것이다. 구두약속의 실효성을 믿어 왔던 우리 정부는 뒤늦게 당황하며 합의 사항
위반에 대한 중국측의 해명과 시정을 요구키로 했다지만, 그 같은 관영 월간지의 역사왜곡을 중국 정부의 우발적인 실수로는 볼 수 없다. 더욱이
서울에서 열린 고구려연구재단 주최 한중 양국 고구려사 학술회의에서도 중국 학자들은 같은 내용을 강변하지 않았는가.
중국 정부가 그동안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로 편입시키는 ‘동북공정’을 추진하면서도 고구려사 왜곡은 정부가 개입한 게 아니며 동북지방
역사학자들의 학술연구일 뿐이란 주장은 또 한번 거짓으로 드러난 셈이다. 그것은 중국 정부가 역사왜곡 중지 약속을 한 달도 못돼 파기함으로써
한국민의 항의 정도는 안중에도 없는 패권주의적 태도를 공공연히 내보이고 있다는 더욱 거센 비난을 자초하는 일이다.
특히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한중 학술회의에서 “고구려 영토 대부분이 현 중국 영토이며 주민의 4분의 3이 중국에 속하므로 중국이 고구려의
계승자”란 주장을 되풀이한 중국측 학자들의 주장이다. 더 따질 것도 없는 명백한 남의 나라 역사를 가로채서, 여러 나라가 공유할 수 있다는
‘일사양용(一史兩用)’이란 억지 주장으로 국제사회 선진대국이 되겠단 말인가. 중국은 남의 나라 역사를 빼앗아 동북아의 선린관계를 해치는 행위를
즉각 중지해야 한다.
중국이 이토록 한국을 만만히 보고 역사왜곡을 계속하는 것은 우리 정부의 우유부단한 대응 탓도 있다. 안에서는 그토록 서슬 퍼렇게
역사바로잡기를 하면서 중·일의 역사왜곡에는 왜 그토록 무기력한가. ‘구두약속’이 전혀 구속력 없는 한낱 국면 모면용이었음이 확인된 이상 정부는
이제라도 당당하게 왜곡 시정을 중국 정부에 요구해야 할 것이다.
(세계일보 2004-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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