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5개항 합의 無力化

서울 온 中학자들 "고구려는 中역사" 공개주장

고구려사를 중국 역사에 포함하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주창자인 쑨진지(孫進己) 선양(瀋陽) 동아연구중심 주임 등 중국 학자들이 16일 서울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 “중국 땅에서 벌어진 고구려는 중국 역사” “삼국통일이 아니라 신라의 백제 통합일 뿐”이라는 고구려사 왜곡 주장을 거듭 확인했다.

쑨씨의 이 같은 주장은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역사문제로 인한 우호 협력관계의 손상을 방지하자’는 등 5개항의 구두양해에 합의한 것과 상관없이 중국은 학자들을 통해 ‘고구려사 왜곡’을 계속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달 한국과 중국 정부가 합의한 구두양해는 ‘고구려는 중국사’라는 주장을 내년도 교과서에 싣지 않는다는 등을 담고 있을 뿐이다.

쑨씨는 이날 고구려연구재단이 연 제1회 국제학술회의 ‘한국사 속의 고구려의 위상’에 발표자로 참석, “고구려 영토의 3분의 2가 현재 중국의 영토이며 당시 고구려 주민의 4분의 3이 중국으로 귀속했다”며 “이는 오늘날 미국사를 서술할 때 아메리칸 인디언의 역사까지 포괄하는 반면, 이민자들의 원래 고향이던 유럽사를 언급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쑨훙(孫洪) 동아연구중심 연구원은 ‘고구려가 중원 왕조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했다. 중국학자들은 “고구려는 대부분의 역사에서 줄곧 중원에 귀속돼 있었다” “한국에서는 고구려의 역사가 ‘일통삼한(一統三韓·신라의 삼국통일)’을 통해 신라로 계승됐다고 말하지만, 고구려는 ‘삼한’에 포함되지 않는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백제·신라 두 나라의 통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임기환(林起煥) 고구려연구재단 연구기획실장은 “쑨진지의 주장은 현재의 영토중심주의적 사고일 뿐”이라며 “역사의 계승권은 지금의 영토적 주권과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임 실장은 “중국 사서에서는 고구려를 ‘동이전(東夷傳)’에 수록하고 있는 반면 고려에서는 ‘삼국사기’ 이래 고구려사를 정식 역사체계로 인식하는 사서를 편찬해왔다”고 밝혔다.

이번 학술대회에 참가한 몽골 사학자 오 바트사이한(O Batsaikhan) 몽골 과학아카데미 교수는 “중국은 1950년대부터 몽골사가 중국사의 일부라는 왜곡을 계속해 왔으며 1991년 출간된 ‘몽고족통사’는 그 대표적인 작업이었다”며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과 몽골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6월 고구려연구회 주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도 터키학자는 “중국이 돌궐의 역사를 자국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한국과 몽골·터키 등 중국의 역사 왜곡 대상 국가들이 연대해서 대처하자고 제의했다.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2004-9-16)

서울서 “고구려는 중국史” 적극적 공세펴는 中학자들

‘5개항 구두합의’후 中학자 3명 학술회의 참석

16일 서울서 열린 고구려연구재단 제1회 국제학술회의 ‘한국사 속의 고구려의 위상’은 지난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이슈화된 이후 처음으로 ‘동북공정’의 주역인 중국 역사학자들이 참가한 자리였다. 그동안 중국 학자들은 번번이 학술회의 직전에 참석을 취소했었다. 이번 대회엔 ‘동북공정’ 논리를 앞장서서 주창해온 중국 선양(瀋陽) 동아연구중심의 쑨진지(孫進己) 주임과 쑨훙(孫泓) 연구원 등 중국학자 3명이 참석했다. 지난달 우다웨이 중국외교부부장이 한국 정부와 고구려사 왜곡 관련 ‘5개항 구두 양해’를 합의한 후 달라진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날 학술회의는 고구려사에 대한 중국의 ‘적극 편입’ 입장만 다시 확인한 자리였다. 중국 학자들은 ▲고구려의 영토와 인구 대부분을 계승한 쪽이 중국이며 ▲고구려는 역대 한족(漢族) 왕조에 귀속된 일개 지방정권에 불과했다는 기존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쑨진지 주임은 “고구려가 한때 중원 왕조에 승복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고는 해도, 고구려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대부분 중국에 귀속돼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쑨훙 동아연구중심 연구원은 “고구려는 남북조의 여러 나라에 계속 납공하면서 책봉받았고, 고구려 왕은 ‘표기대장군’ ‘정동대장군’ 등의 관직을 받았다”며 “고구려는 중국의 역대 황조(皇朝)에 신부(臣附)함으로써 ‘중국의 일개 지방민족정권’으로서 존재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임기환(林起煥) 고구려연구재단 연구기획실장(고구려사 전공)은 “고구려 멸망 이후 고구려 역사의 계승의식은 한국의 왕조에서 이어졌다”며 반박했다. 임 실장은 또 ▲광개토대왕비 등 금석문에 나타나듯 고구려는 중원 왕조와는 다른 독자적인 천하관(天下觀)을 가지고 있었으며 ▲당시의 국제질서에서 고구려의 세력권이 하나의 뚜렷한 경계선이 됐다는 점 등을 들어 중국 학자들의 논리를 반박했다. 서영수(徐榮洙) 단국대 교수는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에서 ‘조공’의 기록과 ‘전쟁’의 기록이 함께 나타나는 것은 오히려 당시 ‘조공’으로 표현된 관계가 구속력을 갖는 신속관계가 아님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조공관계는 단지 정기적으로 진행된 의례적 관계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또 “조공-책봉제도는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외교관계였음이 이미 국제적으로 공인됐다”고 말했다.

쑨진지 주임은 “중국이 고구려의 가장 주요한 계승자”라고 말했다. “동북아 각 나라의 고구려 영토·국민·문화의 계승 정황을 보았을 때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 각 나라가 모두 고구려를 계승한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비율로 보아 중국이 가장 높다”는 주장이다. 쑨 주임은 “중국 문집에 고구려인들의 시가가 전해지고 고구려의 가무도 당나라 궁정에서 연주되는 등 문화면에서도 중국은 고구려의 계승자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임기환 실장은 “고구려 주민의 4분의 3이 당시 중국에 귀속됐다는 주장은 논거가 불충분하다”며 “고구려 유민들이 당나라에 강제로 이주된 것과는 달리, 신라로 이주한 고구려 유민은 자의적 선택인 경우가 많았으며, 여기에는 삼국시대 이래 형성돼 온 삼국민의 동류의식이 중요한 기반이 됐다”고 반박했다. 임 실장은 또 “축성법·토기·고분벽화 등 중국과는 다른 고구려의 독자적인 문화는 백제·신라와 공유되는 부분이 많았고, 그 이후의 한국사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2004-9-16)

'고구려는 중국사' 주장한 중국 부녀 역사학자

사단법인 고구려연구재단(이사장 김정배)이 16- 17일 서울 소피텔 앰배서더호텔에서 개최하는 제1회 국제학술회의는 대회 주제가 ' 한국사 속의 고구려의 위상'이다.

주최측이 이번 행사를 어떤 목적으로 기획했는 지는 이러한 주제가 단적으로 말 해준다. 고구려사는 한국사 일부이며 중국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국내 학술대회에 중국측은 설혹 발표자나 토론자로 초청을 받는다고 해도 원고만 보내고, 불참하는 하는 것이 대체적인 관례였다.

하지만 세계 각지의 학자들을 불러놓고 고구려사가 한국사임을 확약받으려는 이런 자리에 중국측은 아주 '당당한 모습'으로 역사학자를 파견했다.

예상대로 중국학자들은 초지일관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 지방정권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고구려의 역사는 중국사에 귀속돼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 했다.

이 자리에 중국에서는 동북아 역사학계의 거물인 쑨진지(孫進己.73)와 젊은 여성학자 쑨홍(孫泓.34)이 발표자로 참여했다.

한-중 국교수립 이후 거의 매년 한차례이상 한국을 찾는 쑨진지는 그 때마다 쑨홍을 동반하곤 했다. 두 사람은 부녀(父女)사이다.

대회 첫날 발표된 이들 부녀의 글에서 새로운 내용은 없다고 잘라 말해도 좋다. 이런 사정은 발표문만 보내고 막상 발표자는 나타나지 않은 북한측 연구자 4명을 포함해 이번 대회에 참여한 7개국 13명의 발표자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다. 발표문 상 당수가 재탕 이상이며, 심지어 삼탕, 사탕에 이르는 것도 있다.

어떻든 이번 대회에서 쑨진지 부녀는 역할을 분담해 고구려사가 중국사의 일부라는 종전 주장을 거듭했다.

선양(瀋陽)동아연구중심 주임인 쑨진지는 '동북아 각국의 고구려 토지.인구.문 화적 계승'이라는 발표문에서 "원칙적으로 동북아 지역의 모든 것은 동북아 공영의 것임을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그러나 영토라든가 인구, 문화적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중국은 고구려의 가장 주요한 계승자"임을 의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한 근거로 그는 고구려 영토 중 3분의 2 가량이 현재의 중국 영토 안에 포함돼 있고, 고구려 인민의 4분의 3이 중원으로 이주했음을 들었다.

이에 화답해 아버지와 같은 기관에서 연구원으로 있는 쑨홍은 '고구려와 동북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민족간의 관계'라는 논문에서 "고구려는 이미 기원전 2세기 태동 무렵에 한나라의 지방조직이었고 그 이후 멸망 때까지도 역대 중국왕조의 제후국 이었다"는 논리를 내세워 고구려가 중국사 일부임을 강변했다.

이에 대해 이들에 대한 토론자로 나선 임기환 고구려연구재단 실장과 서영수 단 국대 교수 등은 "이는 현재의 영토주의에 기반을 둔 자의적인 역사 해석"이라며 중 국의 고구려사 편입 움직임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연합뉴스 / 김태식 기자 2004-9-16)

한-중, 고구려사 학술교류 첫만남 ‘냉랭’

고구려연구재단 ‘제1회 국제학술대회’‥ 접점 못찾아

한·중간 고구려사 학술교류가 드디어 시작됐다. 고구려연구재단(이사장 김정배)이 16일부터 이틀간 서울 소피텔 앰버서더 호텔에서 제1회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이 자리에는 국내 학자는 물론 쑨진지·쑨홍 등 ‘동북공정’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중국 학자들도 참가했다. 북한 학자들은 관련 논문을 보냈고, 미국·일본 학자들도 고구려사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40여 명의 국내외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번 학술대회에선 한·중간 역사인식의 차이가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 접점 마련에는 한계를 드러냈다.

중국 / 한국사의 일부라 말할 털끝만한 근거도 없다

◇ 중국= 현재의 국경을 중심으로 과거사를 해석하는 ‘영토중심주의 사관’을 그대로 드러냈다. 쑨진지 심양동아연구중심 주임은 발표를 통해 “고구려가 존재한 당시에는 중국내 소수 민족의 지방정권이었다”며 “고구려 멸망 이후 그 토지·인민·문화가 현재 어느 나라의 영토 안에 있는지에 따라 그것을 계승한 나라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고구려 인구와 영토의 대부분이 중국의 각 민족에 융화된 만큼 “중국이 고구려의 가장 주요한 계승자이며, 북한과 한국은 그 다음”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일사양용(一史兩用)’의 논리 속에서도 고구려에 대한 중국의 주도적 지위를 강조한 셈이다.

그러나 쑨진지의 딸이기도 한 쑨홍 심양동아연구중심 연구원은 “고구려를 한국사의 일부라 말할 털끝만한 근거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중국의 지방정권인 고구려는 신라·백제를 압박·침략했으나, 왜와는 대등한 관계를 형성했다”고 밝혔다. 중국을 정점으로 그 지방·복속정권인 고구려 및 왜가 신라·백제를 일방적으로 지배한 것이 고대 동북아 질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남북한 / 현재의 영토주권과 역사계승은 구분 필요

◇ 남북한= 임기환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은 토론에서 “역사 계승은 역사적 맥락과 역사계승의식의 결과이므로, 현재의 영토적 주권과는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며 “역사계승의식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역사서의 편찬인데, 중국 사서에는 고구려에 대한 어떤 계승도 표방하지 않았지만, 우리 사서에는 통일신라 이후 근대까지 각종 사서의 편찬을 통해 고구려 계승의식이 지속됐다”고 말했다.

논문만을 보내온 북한 학자들은 일제 식민사관을 지렛대삼아 중국을 비판했다. 김유철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는 “엄연히 요동지방에 있었던 낙랑군이 평양에 위치했다는 것은 일제 어용사학자들의 주장”이라며 “한사군이 조선반도에 있었다는 주장을 디딤돌로 한 온갖 주장은 도저히 성립될 수 없다”고 밝혔다. 강세권 북한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연구원은 “고구려·백제·신라는 삼국 시기 주민들을 편의상 구분한 지역별 호칭일 뿐, 그들 사이를 민족적으로 갈라놓는 명칭이 아니었다”며 “조선민족의 역사를 왜곡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허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 중국인들에겐 고구려 ‘역사적 기억’ 없어

◇ 미국 등= 서구 학자들은 ‘민족’ 문제를 중심으로 고구려사 논쟁을 살폈다. 존 던컨 유씨엘에이대 교수는 “민족(내셔널리즘)은 토착적 정체성·신화·의식·상징과 분리할 수 없다”며 “중국인들에게는 고구려가 자기 역사의 일부라는 ‘역사적 기억’이 없지만, 한국인의 공동체적 기억 속에서 고구려사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판카지 모한 시드니대 교수는 광개토대왕비에 대한 분석을 통해 “중국·일본이 신 개척지의 통치권에 대한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학과 인류학을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겨레신문 / 안수찬 기자 2004-9-16)

한자리 모인 韓-中학자 고구려사 격론

“고구려사를 오늘날 어느 국가가 계승하고 있는가는 오직 지금의 국경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 영토 안에서 이미 다른 나라에 속해 계승되는 토지나 국민, 문화를 자기의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주권침범 행위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16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장충동 소피텔 앰배서더 호텔. ‘한국사 속의 고구려의 위상’을 주제로 고구려연구재단이 개최한 제1회 국제학술회의에는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200여명의 방청객이 참석했다.

이날 학술회의에서 중국의 대표적인 고구려 학자가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논리를 내세우자, 국내학자들이 조목조목 비판하는 등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역사계승을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 하는 인식론에서부터 세부 사료해석까지 서로 다른 견해차를 좁히지는 못했다.

중국의 쑨진지(孫進己ㆍ73) 선양(瀋陽)동아연구중심 주임은 첫 발표자로 나서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이 주로 계승했다’고 주장했다.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사는 온전히 중국사라고 주장하는 최근 일부 중국학자들의 논리와 달리 그는 고구려사는 중국을 비롯해 남북한이 함께 계승했다는 ‘일사양용’을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역사의 주된 계승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1,000여년 전 고구려의 역사적 귀속을 이용하여 오늘날 현실적으로 형성된 국경을 바꾸려는 근거로 삼는 기도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고구려사 갈등이 영토분쟁으로 번질 것을 우려했다.

발표가 끝난 뒤 토론자로 나선 임기환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실장은 우선 孫 주임의 ‘현재 영토중심주의 사고’에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 실장은 “역사의 계승이란 역사적 맥락을 누가 계승했느냐는 역사의식의 문제”라며 “과거 역사의 계승권과 현재의 영토 주권과는 분명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여러 역사서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를 의미하는 등장하는 ‘삼한’을 고구려가 제외된 것이라고 정반대로 보는 孫 주임의 해석은 기본적인 사서 해석에서 오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孫 주임은 “지금 프랑스 땅인 갈리아, 브리튼을 로마가 지배했다고 이탈리아 역사라고 말하지 않는다”며 “민족의 계승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거론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토지 점유와 계승권에 기초하는 것이 세계사와 국제법에 통용되는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고구려사가 중국사가 아니라고 하는데 모든 것이 한국에 계승됐다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孫 주임의 딸인 쑨홍(孫泓ㆍ34) 선양동아연구중심 연구원도 ‘고구려와 동북아시아의 여러나라와 민족간의 관계’라는 발표에서 “고구려는 중국에 예속해 있으면서 다른 민족을 통치하는 형태”였다고 고구려가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점을 부각했다.

토론자로 나선 서영수 단국대 교수는 “모든 대외관계를 신속의 유무에 두는 것은 조공책봉외교의 성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조공책봉외교가 동아시아 전통의 외교 양식이라는 많은 연구성과가 축적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또 “유리한 사료만 재단해 일방으로 해석하는 것은 연구자의 태도”가 아니라며 孫 연구원의 자의적인 연구방법을 문제 삼았다.

발표가 끝난 뒤 김정배 고구려연구재단 이사장은 “중국학자들의 ‘일사양용’ 논리는 역사 연구에서 일고의 가치도 없는 비학문”이라며 “역사는 일관성 있는 계승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 국민이나 학계에서 과거 고구려 영토를 내놓으라고 주장한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그런 움직임이 있는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견해”라고 비판했다.

김 이사장은 “한중 학자들의 인식 차이가 크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며 “앞으로 이런 학문 논의를 계속 이어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 김범수 기자 2004-9-16)

고구려사 국제학술대회 韓―中학자 설전

중국 학자들의 ‘고구려사는 중국사’라는 주장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16일 서울에서 고구려사에 대한 한·중 학자들의 설전이 벌어졌다.

고구려연구재단은 이날 서울 소피텔앰배서더호텔에서 ‘한국사 속의 고구려의 위상’이라는 주제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 행사에는 중국과 몽골 일본 미국 호주 등에서 9명,국내에서 9명의 사학자가 각각 참여해 토론을 벌였다.

고구려사 논쟁을 촉발시킨 주역 중 한 명인 중국 선양동북아연구중심 쑨진지 주임은 첫날 진행된 ‘동북아 각국의 고구려 토지·인민·문화에 대한 계승’이라는 발표를 통해 “고구려사는 중국사의 일부”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당시 고구려 영토의 3분의 2가 현재 중국에 속한 점, 멸망 당시 고구려 인구의 4분의 3인 80여만명이 중국에 남아 중국인에 흡수된 점, 고구려 문화의 상당 부분이 이후 한족의 문화와 융합된 점 등으로 볼 때 고구려 역사는 중국이 계승했다고 보는 것이 맞는다”고 주장했다.

또 쑨씨의 딸이자 같은 연구소 소속 쑨훙 연구원도 ‘고구려와 동북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민족간의 관계’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고구려는 기원전 2세기, 즉 주몽 이전에 한나라 현도군에 속한 일개 속국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구려가 중국 황조에 조공과 책봉 관계를 유지한 점과 한자 사용, 불교와 도교, 유가사상에 영향받은 점 등으로 고구려와 중국은 분명한 지방자치정권과 중앙정부의 관계였다”고 역설했다. 특히 “고구려는 이두문자를 만들지 못했고 평양성에 새겨진 글자는 결코 이두문자가 아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국 학자들은 “중국측 주장은 억지”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쑨진지 주임의 발표에 대해 고구려연구재단 임기환 교수는 “쑨 교수는 미국도 원주민의 역사를 자국 역사에 포함시켰다고 주장하는 등 사실이 아닌 논거를 들고 있으며, 고구려 영토가 현재 중국이기 때문에 중국 역사라는 주장은 궤변이나 다름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쑨훙 연구원의 발표에 대해서는 단국대 서영수 교수가 나서서 “쑨 교수의 사료 해석은 주관적, 편의적이다”면서 “고구려가 현도군과 대등한 관계였다는 사료들이 엄밀히 존재하며 고구려가 중국 황조에 조공을 바쳤다는 사실만으로 속국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시 중국이 동아시아 전체 국가들과 조공 책봉 관계를 맺었다는 점을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몽골 학자가 중국의 몽골 역사 왜곡 문제를 거론할 예정이어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몽골 과학아카데미 오바트사이한 교수는 17일 발표를 통해 “몽골인의 조상인 흉노족은 유목이라는 독특한 생업과 국가 구조, 문화를 가진 독립적 집단이었으며 중국 한나라와의 기원전 198년 조약을 통해 상호 대등 관계를 확인했는데도 중국 연구자들은 수시로 흉노를 중국 소수민족으로 기술해 왔으며, 이는 몽골을 중국의 일부로 만들려는 의도”라고 주장할 예정이다.

고구려연구재단 김정배 대표는 “중국 학자들은 이번에도 고구려사가 중국사의 일부라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몽골과 일본 미국 등 학자들이 고구려가 독립국이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어 중국 학자들도 이런 분위기를 느끼고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학술대회는 17일까지 이틀간 진행되며 행사 후 참가자들은 아차산 홍련봉 등 고구려 유적을 함께 답사할 예정이다.

(국민일보 / 황세원 기자 2004-9-16)

"중국이 고구려사 왜곡" 한목소리

"징기스칸이 중국인? 몽골의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측 역사 왜곡의 뿌리는 아주 깊다. 최근 징기스칸까지도 중국인이라고 강변하는 그들을 보노라면 징기스칸이 남긴 '남쪽에 중국이 있음을 아침마다 자손들에게 상기시켜라'는 경구의 깊은 뜻이 더욱 새롭게 되새겨진다."

몽골 과학아카데미의 오 바트사이한(42) 교수의 지적이다. 고구려사에 관해 몽골은 한국과 똑같은 입장이었다.

고구려연구재단(이사장 김정배 고려대 교수)이 주최한 제1회 '한국사 속의 고구려의 위상'국제학술회의(16, 17일)에 참가한 오 바트사이한 교수는 "몽골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한국측과 연대해 중국의 역사 왜곡에 공동 대응할 뜻이 있다"고 밝혔다.

일반인 3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전 10시부터 소피텔 앰버서더 서울 드랜드볼룸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중국은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고립감을 느껴야 했다. 대회에는 중국.몽골.호주.미국.러시아.일본 등 7개국의 역사학자 20여명이 발표.토론자로 참여했다.

중국 선양(瀋陽)동아연구센터의 쑨진지(孫進己.73) 주임이 첫 발표자로 나섰다. 고구려 문제가 불거진 이래 중국 학자가 직접 방한해 논문을 발표하기는 처음이다.

그는 "고구려 당시를 두고 말한다면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 민족이고 지방 정권"이라는 중국의 왜곡된 입장을 대변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영토와 인구가 역사 계승을 판단하는 기준"이라며 "점유율로 볼 때 중국이 고구려사의 가장 주요한 계승자이고, 한국.북한을 비롯한 동북아 여러 나라가 고구려사를 함께 계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하나의 역사를 여러 나라가 공유할 수 있다'는 '일사양용(一史兩用)'론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각국 발표자가 자리를 함께 한 기자 간담회에서 집중적으로 비판받았다. 인도 출신의 판카지 N 모한(호주 시드니대) 교수는 "석가모니의 탄생지가 현재 네팔에 있는데 중국식대로라면 석가모니는 네팔 사람인가. 또 중국이 네팔을 병합하면 석가모니가 중국인이 된다는 말인가. 역사의 흐름은 국경의 변화에 따라 바뀔 수 없다"며 중국 주장의 허점을 파고 들었다.

몽골의 오 바트사이한 교수는 "고구려는 명백히 한국의 역사"라고 가장 강하게 몰아붙이며 중국의 몽골사 왜곡과 관련된 일화를 소개했다. "1994년 중국의 몽골사 왜곡이 문제가 돼 당시 몽골 외교부가 강력히 항의했다. 중국 외교부는 '일부 학자의 생각이지 정부의 입장은 다르다'고 해명하며 넘어갔다. 하지만 다음 해에도 왜곡된 주장을 담은 책이 출간되는 등 변한 것이 없었고, 이후 몽골 학자들은 연구과 신문 기고를 통해 대응해 오고 있는 형편이다."

미국 UCLA대의 존 B 던컨 교수도 "지난 1000여년 동안 한국이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고구려는 주요한 '역사의 기억'으로 작용했다"며 "고구려를 한국사의 일부로 본다"고 거들었다.

(중앙일보 / 배영대 기자 2004-9-16)

"中, 몽골 역사도 왜곡"

고구려연구재단 제1회 국제학술회의에 참가한 몽골 과학아카데미 오 바트사이한(42) 연구원은 16일 “중국학자들의 몽골사 왜곡은 역사가 길다”며 “1990년대 들어 중국서 발간된 여러 몽골 관련 역사서의 왜곡에 대해 몽골 정부가 공식으로 항의했지만 중국 외교부는 일부 학자들의 연구일 뿐,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다르다는 답변만 내놓았다”고 말했다.

몽골사를 전공한 오 바트사이한 연구원은 17일 학술회의에서 ‘중국 역사학자들의 몽골사 왜곡에 대하여’를 발표한다.

독자적인 문화와 생업을 가졌던 흉노를 중국 고대 소수민족의 하나로 분류하는 등 중국학자들의 몽골사 왜곡 실태를 밝히는 내용이다.

그는 발표문에서 1986년 중국 공산당 내몽골자치구 위원회 지도에 따라 출간된 ‘몽골족간사(簡史)’에 ‘몽골족은 조국 대가정 가운데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근면하고 용감한 민족이다.

그들은 장기간에 걸쳐 우리 나라 북방의 광활한 초원에서 살아왔다’며 독립적인 몽골역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규정했다고 비판했다.

또 1990년대에 출간된 ‘몽골족통사’에서는 1911년 몽골 독립과정을 ‘제정 러시아 제국주의자들의 장기간에 걸친 선전과 지휘 하에 일어난 연극’으로 규정하고, 독립운동가들을 매국노로 매도했다고 소개했다.

오 바트사이한 연구원은 “칭기즈칸은 ‘아침마다 내가 일어나면 남쪽에 중국이 있다는 걸 상기시켜달라’고 말할 정도로 중국을 주적으로 생각했다”는 말로 칭기즈칸을 중국사람으로 보는 최근 중국학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며 “중국의 역사왜곡은 대국, 대민족의 침략정책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한 몽골과 한국이 민간이나 정부차원에서 협력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한국일보 / 김범수 기자 2004-9-16)

中학자들 서울서 “고구려는 中역사” 주장

“고구려가 당시 누구에게 귀속됐는가는 역사상의 학술문제이다. 각국 학자들은 자유롭게 서로 다른 의견을 발표할 수 있으나, 현실 속에서 고구려 역사의 일부분이 누구에게 계승됐는가는 오히려 현실의 정치문제이지 우리 학자들이 임의로 변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6일 서울 중구 장충동 소피텔 앰배서더호텔에서 열린 고구려연구재단 제1회 국제학술대회에서 중국 선양(瀋陽)동아연구중심의 쑨진지(孫進己) 연구주임은 중국의 고구려사 귀속 주장의 배후에 정치논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는 동북공정(東北工程)에 중국 정부측 인사들이 참여한 데에 대해 “중국의 특성상 정부의 관여가 불가피해 민간 범위를 넘어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동북공정은 학술연구의 일환일 뿐이라고 강변해 모순을 드러냈다.

쑨 주임은 이날 ‘동북아 각국의 고구려 토지 인민 문화에 대한 계승’이란 발제문을 통해 현재의 국경선에 입각해 고구려사는 남한과 북한의 역사인 동시에 중국의 역사라는 특유의 ‘일사양용(一史兩用)’을 계속 주장했다. 그는 또 “무엇을 근거로 중국 땅에 있는 많은 고구려 후손의 역사와 문화 계승권을 박탈하겠다는 것인가”라면서 “영토의 3분의 2와 인구의 4분의 3을 중국이 계승했으므로 당연히 중국이 주된 계승국”이라고 강변했다.

이에 대해 김정배(金貞培) 고구려연구재단 이사장은 “쑨 선생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면서 “한국인들이 고구려의 역사를 계승하겠다고 나선 것을 마치 중국 영토가 된 고구려 땅을 되찾겠다고 나선 것처럼 뒤집어씌우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 이사장은 또 “역사는 일관성을 지녀야하는데 현실 논리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을 어떻게 역사라고 부를 수 있느냐”며 “한마디로 일사양용론은 학문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쑨 주임은 ‘일사양용론에 따르면 식민지 해방 전 인도의 역사가 대영제국의 역사라는 논리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해 “인도는 현재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므로 인도사는 당연히 영국사가 아니다”라며 “만약 고구려 영토가 중국에서 떨어져나간다면 그때 고구려사는 중국의 역사가 아니다”라고 군색하게 답했다.

이날 학술회의에 참석한 다른 나라 학자들은 “고구려사는 한국사의 일부분”이라는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존 던컨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민족의 자아상 형성은 역사에 대한 기억으로 이뤄지는데 중국의 사서(史書)는 분명히 고구려를 타자(他者)로 파악하고 있는 반면 한국의 사서는 고구려를 민족사로 분명히 인식해왔다”고 밝혔다. 조선족출신인 방학봉 전 옌볜대 발해사연구소 소장도 고구려 도성의 독자성을 조명한 논문을 발표한 뒤 ‘고구려를 중국 소수민족의 지방정권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내 발제문은 분명 도성이라는 표현을 썼다. 도성은 일국의 수도에 쓰는 표현”이라는 우회적인 말로 동북공정을 비판했다.

몽골 과학아카데미의 오 바트사이한 교수는 “1994년 중국에서 몽골 역사를 왜곡한 ‘외몽골독립의 내막’이란 서적 출간이 외교문제화하자 중국 정부는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면서 “하지만 중국은 바로 이듬해에 다시 몽골의 영토를 중국 영토라고 강변하는 3권짜리 ‘몽골국통사’를 출간했다”고 밝혀 중국의 이중플레이가 고구려사 왜곡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증언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파문 이후 한국과 중국 학자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본격 토론을 벌인 이날 학술회의를 통해 고구려사가 자기들의 역사라는 중국 주장의 불합리성이 다시 한번 분명히 드러났다. 학자와 일반인 등 150여명이 이날 토론회를 지켜봤다.

(동아일보 / 권재현 기자 2004-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