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史 해결 ‘어정쩡한 첫단추’

한국과 중국의 24일 고구려사 협상결과를 보면 중국의 양보를 부분적으로나마 이끌어낸 점을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내년 가을학기용 중국 교과서에 고구려사 왜곡내용이 담기는 것은 막아 일단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과거의 왜곡과, 동북공정 등 좀더 본질적 왜곡행위 시정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지 못해 고구려사 논란 재발 가능성을 남겼다. 합의문 형태가 아닌 구두 양해사항으로 발표돼 구속력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 합의사항과 의미 = 중국 정부가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로 함으로써 내년 가을학기 초·중·고 교과서에 고구려사 왜곡내용이 담기지 않게 됐다. 출판물과 중국 지방정부의 관광홍보물 등을 통한 고구려사 왜곡행위도 중단될 전망이다. 중국이 어느 정도 성의를 보인 것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중국측이 우리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해석해도 좋다고 단언했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는 지방이건 중앙이건 마찬가지”라고 답해 지방정부의 고구려사 왜곡문제를 시정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지방정부와 출판문제는 중앙정부가 어쩔 수 없다”는 이달 초까지의 입장에서 상당히 후퇴한 것이다.

중국은 그러나 ‘고구려사 문제의 정치화를 막고 학술적 해결을 도모한다’는 지난 2월 합의 이후 중국 당국이 개입한 왜곡행위에 대한 원상복구 의지는 밝히지 않았다. 고구려사 왜곡행위에 대한 유감표명도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국은 고구려사 문제의 본질이 중국측의 고구려사 왜곡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되레 ‘양국 언론·출판·학술단체에 주의를 당부하고 교과서 및 출판물을 통제하자’면서 양국 모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물타기를 시도했다가 우리 측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고 한다. 역사문제와 영토·국경문제를 연계하지 말자는 제의도 해왔다. 고구려사 왜곡사태 후 한국에서 지린(吉林)성 간도 문제 등이 거론되고 있는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중국측은 자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고구려사 관련부분 및 한국 과거사 전면 삭제에 대한 우리 측의 원상복구 요구 역시 거부했다. 정부관계자는 “중국측은 충분히 ‘유념’하고 있다고 말했고, 우리 측은 이를 재발 방지 약속으로 양해했다”고 설명했다.

◇ 전망 = 이번 협상과정에서 드러난 중국 측의 고구려사 왜곡사태에 대한 인식은 한국의 그것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일부 사안의 시정을 약속했지만 근본적 태도변화에 대해서는 유보했다. 이번 합의가 문제 해결의 첫 걸음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고구려사는 중국 역사가 아니라 한국 역사라는 점을 분명히 하지 못한 점도 걸리는 대목이다.

중국으로서는 한·중수교 12주년과, 공산당 서열 4위인 자칭린(賈慶林) 정협(政協) 주석의 26일 방한에 앞서 껄끄러운 대목을 최소화하려는 정치적 계산을 했음직도 하다. 이에 따라 영토·국경 등 장래에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의 소지를 없애겠다는 중국의 국가전략상 목표가 바뀌지 않는 한 고구려사 해석을 둘러싼 논란은 언제라도 재발할 소지를 남겨놓고 있다. “앞으로 경각심을 갖고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여부를) 지켜보겠다”는 우리 고위당국자의 말은 고구려사 문제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잘 말해준다.

－ 구두양해란? －

국제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합의형태는 아니다. 문서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 실질적인 효력은 법적 근거가 아닌, 양국간 신뢰관계에서 나온다는 게 우리 외교부의 해석이다. 고위당국자는 “어느 한쪽이 약속을 깰 경우 양국관계 및 해당국의 국제적 위상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면서 “이 점에서 어느 정도 구속력이 있는 약속”이라고 설명했다.

(경향신문 / 김진호 기자 2004-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