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최대 파트너… ''역사전쟁''으로 흔들

한국과 중국이 오는 24일로 수교 12주년을 맞는다. 한·중 두나라의 관계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경제적으로는 단순한 협력차원을 넘어 동반자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양국관계를 뒤흔들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중국 관계를 전면 재고해야 한다는 반성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12년간의 한·중관계는 무엇을 남긴 걸까. 앞으로 양국관계는 어떻게 꾸려나가야 하는 걸까. / 편집자 주

중국 베이징에는 왕징(望京)이라는 곳이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인이 하나둘씩 모여들던 이곳은 언제부터인가 한국타운으로 변해 버렸다. 주변에는 가공식품에서 의류,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한국 것이라면 없는 게 없다. 이곳에 사는 한국인은 조선족 동포를 포함해 2만명을 웃돈다.

베이징뿐만이 아니다. 칭다오(靑島), 옌타이(烟臺), 선양(瀋陽) 등 한국기업이 진출한 곳이면 어김없이 한국타운이 들어서 있다. 중국인은 모여드는 한국인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같은 현상은 한·중수교 12년 만에 나타났다. 두 나라가 얼마나 서로 필요로 했던가를 입증하는 대목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지난해 7월 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전면적인 동반자관계를 만들어 나가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문제가 표면화하면서 한·중 관계는 국교수립 12년 만에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중국의 팽창주의적 사고가 한국의 민족 정체성 자체를 위협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협력 강화를 외치던 한·중 간에는 역사전쟁의 막이 오르고 있다. 한·중 국교 12주년을 맞아 ‘중국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중국경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 최대 경제파트너로 떠오른 중국 = 1990년대 이후 국내에서는 큰 변화가 일었다. 한국의 정치·외교의 무게중심이 미국과 일본에서 미·중·일로 다원화하기 시작했다. 대외경제에서는 중국의 비중이 오히려 미국과 일본을 앞지르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한·중 간 교역규모는 지난해 570억2000만달러에 달했다. 중국 세관 통계로는 양국 교역액이 이보다 훨씬 많은 632억3000만달러에 이른다. 올 상반기에만 369억9000만달러에 달하는 물건이 서해바다를 건너 오갔다. 홍콩과의 교역액을 제외하더라도 이미 미국을 크게 앞지른 액수다.

투자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 투자붐이 일면서 한국 기업은 지난해에만 중국에 12억8700만달러를 쏟아부었다. 이 돈으로 중국에 세워진 일정규모 이상의 기업도 1592개에 달했다. 이에 반해 미국에 대한 투자는 지난해 10억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중국은 2002년 이후 한국의 최대 투자대상국이다. 중국에 투자된 국내기업 돈은 지난해 말 현재 누계 기준으로 84억7100만달러에 달했으며 8844개의 기업이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 흔들리는 차이나 드림 = 많은 한국기업이 중국 진출에 나서는 이면에는 중국에 대한 환상이 자리잡고 있다. 중국에 상주하는 한국인 20만명도 어느 정도 차이는 있지만 마찬가지다. 중국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인건비가 싼 만큼 얻을 게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중국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물론 차이나 드림을 현실화하는 기업도 있다. 20년에 가까운 국내의 고비용 구조에 멍든 나머지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옮기고 이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회복한 기업도 있다. 일부는 많은 돈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같은 꿈은 흔들리고 있다. 투명하지 못한 중국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손을 털고 나오는 한국기업과 개인 투자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중국시장에서 견디지 못해 철수한 기업은 230곳에 달한다. 올 들어 지난 3월 말까지만 해도 12개 기업이 중국시장을 떠났다. 대부분은 본전도 찾지 못한 채 중국시장을 빠져 나와야 했다. 개인 투자자의 경우 더 혹독한 시련을 겪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줄을 잇는 중국투자 실패는 대부분 ▲ 폐쇄적인 중국시장 ▲ 조선족 동포에 의한 사기 ▲ 준비되지 않은 채 감행되는 모험투자 때문이다. ‘중국시장 파고들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 만큼 힘들다’는 말까지 나오기도 한다.

중국의 보호주의 무역정책도 중국에 호감을 가진 한국인의 차이나 드림을 뒤흔들어 놓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쌍용차를 인수하려던 란싱(藍星)그룹 계열사인 란싱화공의 제소로 첨단 유기화학물인 비스페놀A에 대한 반덤핑조사가 시작됐다. 한·중 교류 확대의 이면에서는 경제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고개 드는 역사전쟁 = 한·중 간에는 수교 12년 만에 역사전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동북공정으로부터 시작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두 나라 정상이 약속한 동반자관계도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한국 북방고대사의 중국역사 편입 기도는 정상 궤도를 완전히 벗어나고 있다. 중국이 ‘55개 소수민족을 통합한다’는 기치 아래 진행하고 있는 동북공정의 진정한 의도는 무엇일까. 고구려는 한민족 뿌리의 한 갈래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중국은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까.

중국은 한민족의 뿌리인 고조선과 발해에 대해서도 연관 관계를 끊어놓으려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중국 내 조선족에 대한 정치적 통합 차원을 넘어 북한정권 붕괴 후 북한에 대한 연고권을 내세우려는 의도가 짙다고 분석하고 있다. 중국의 한국 북방고대사 왜곡은 과거 역사왜곡의 차원을 넘어 한민족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불거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 내에서는 중국의 역사왜곡을 또 하나의 전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한편으로는 대학 역사교재와 정부·학술단체의 인터넷사이트에서 고구려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수교 12년째를 맞는 한·중 두 나라의 관계는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중국이 역사왜곡의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12년 동안 쌓은 한·중 우호관계는 위기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세계일보 / 강호원 특파원 2004-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