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먼저 북쪽을 바라봐야"
"왕은 남면(南面)한다는 봉건 개념 버리고 통일 대비해야… 풍수도 백년지계를 봐야"
행정수도 예정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풍수지리가 고려됐다는 보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21세기 문명 시대에, 아니 이성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갑자기 풍수지리라니 도무지 이 나라 정치인들의 인문 지수가 얼마나 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에 풍수지리가(家) 자격으로
참여하는 인사들까지 있다니 혀를 찰 일이다.
보자, 풍수지리란 학문이 아니다. 증거도 없고 통계도 없는 술(術)이다. 풍수지리가 발생한 중국의 경우 배산임수(背山臨水) 조건을 따져
도읍을 정했다는 사례가 거의 없다. 정도(定都) 이후 갖가지 술법을 동원해 그 곳이 길지(吉地)임을 선전하는 건 어용 학자들의 몫이었다. 이들이
풍수지리니 역술이니 천문이니 들먹거리며 갖은 아부를 떨어댔을 뿐이다. 풍수가를 자처하는 한 교수가 행정수도 예정지를 가리켜 ‘주산(主山)인
국사봉과 안산(安山)인 장군봉을 비롯해 좌·우 산들이 감싸줘 분지 형태를 이뤄 외적 방어에 유리한 데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곳’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분지라서 외적 방어에 유리하다니, 지금이 화살 쏘고 창 던지는 고대인가? 자급자족이 가능하다니, 공무원들이 거기 가서 둔전을
개간해 농사라도 지을 것인가? 이런 낡은 사고 방식으로 대체 무슨 수도를 건설한단 말인가?
사정이 이러한데 신행정수도 예정지를 거론하면서 풍수지리 운운하고 거기에 ‘배산임수’라는 풍수지리 용어로 점수까지 매겼다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배산임수는 중국의 특수 환경이 낳은 말
물론 배산임수는 중요하다. 하지만 배산임수란 말은 중국이라는 특수한 지리 환경에서 나온 것이지 한국하고는 상관이 없다. 필자도 눈으로
확인한 사실이지만 황하의 범람은 한국인의 상상을 넘어선다. 오죽하면 송나라 때의 유적이 지하 13m에 묻혀 있을까. 그러니 이런 나라에서는
풍수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반면 우리나라의 지리 환경은 중국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산악 지형이 많고 강도 순하게 흐른다.
신행정수도 이전 예정지를 가리켜 풍수적으로 찬탄하는 사람도 문제지만 반대하는 논리 역시 들어보면 웃음이 나온다. 지금 떠도는 풍수지리설을
들어보면 예정 지역이 불사조가 날개를 편 형국이라는 극찬이 있는가 하면, 북고남저(北高南底)에 맞지 않은 남고북저 지세라서 후손이 끊어지는
절손지지(絶孫之地)라는 평도 나온다. 또 남·동·서의 삼면이 산으로 가려진 가운데 북쪽만 휑하니 뚫린 형국이라 안좋다고 한다. 북쪽에는
평야지대가 있어 방어가 취약하고, 남쪽에는 깊은 금강과 산이 있는 형국이라고 하여 불만을 가진 풍수가들이 많다.
또 예정지에 우뚝 솟은 전월산을 진산으로 하면 이 산을 좌우에서 보호하는 청룡과 백호가 없고, 안산이 눈보다 높아 보이는 압혈(壓穴)이어서
불구자를 배출할 것이라고도 한다.
또 근처를 흐르는 금강이 사수(射水)처럼 전월산을 향해 화살을 쏘듯 밀려온 후 꼬리를 감추지 못하니 가난을 면하지 못할
쇠패지지(衰敗之地)라고도 한다. 또한 전월산을 주산 운운하는 것은 금강에 수중도시를 건설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전월산 말고 또 다른 주산으로 거론되는 장기면 국사봉은 도와줄 용(龍·산의 의미)이 없어 좋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국사봉보다 안산에
해당하는 장군봉이 높고, 조산(祖山)인 계룡산이 국사봉에 등을 보이는 게 마땅치 않다고 말한다. 이렇게 흠을 잡자면 한이 없는 게 풍수고,
칭찬하자면 역시 한이 없는 게 풍수다.
심지어 서해에 만조가 되면 이 일대가 범람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거기 살아본 사람이라면 얼마나 우스운 거짓말인지 훤히 알게 된다. 또
주산을 어디로 삼으면 대통령의 권위가 안선다고 한 사람도 있는 데, 대통령의 권위는 스스로 만드는 거지 산 따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다.
사실 나는 충청도가 고향이고, 그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공주ㆍ연기 일대에 관해서는 어디가 어디인지 지금도 훤하다. 또
충청도민들이 그동한 낙후했던 지역 발전을 위해 행정수도 유치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예정지로 발표가 난 뒤 고향 땅값도
치솟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봐야 수도권 땅값에 비하면 어림도 없지만 어쨌거나 고향 사람들이 더 잘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예정지 일대, 역동적 자리 될 수 있어
하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다. 우선 풍수지리란, 특정한 데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편히 하자는 데서 나온 술법이란 걸
이해했으면 좋겠다. 배산임수란 용수가 풍부하면서도 습기가 낮고 맑은 공기가 잘 흐르는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자면 등쪽에 산이 있고, 앞으로
물이 흘러야 한다. 에어컨도 없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지 못하던 옛날에는 당연한 이론이다.
하지만 지금은 100층이 넘는 고층빌딩이 다투어 서는 시대다. 서울의 안산이라는 남산 높이가 262m에 불과한데, 이 정도 높이의 빌딩은
짓고도 남는다. 또한 굳이 남향이 아니어도 요즘은 얼마든지 난방 시설을 해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그러니 집터 잡고 묘지 잡는 식의 풍수지리 얘기는 더 거론하지 말고, 국가의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큰 눈으로 행정수도 문제를 보는 게
좋겠다. 예를 들어 중국의 수도는 날로 북진했다는 데 주목했으면 좋겠다. 황하 이남에 숨어 있던 고대 도읍지들이 조금씩 북진하여 오늘날에는
북경에 수도를 두고 있다. 북경은 그들 말대로 오랑캐들이 살던 땅이요, 고구려가 지배하던 땅 유주다. 중국인들이 오래도록 수도로 이용했던
낙양에서 가자면 무려 2000리나 되는 북쪽 한지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경우에는 남경에서 3000리를 더 북진해 올라온 셈이 된다.
그런데도 그들이 북경을 택한 것은 무엇인가. 그곳이 최전선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답은 매우 간단하다. 산 찾지 말고 봉 찾지 말고 천명(天命)을 주산으로 삼고 민심을 안산으로 삼아야 한다. 풍수지리니
역술이니 하여 혹세무민하는 사이 정작 외적은 턱끝까지 다가와 칼을 내밀지도 모른다.
기왕 나섰으니 충청도를 비롯한 중부권 개발에 힘써 국토의 균형 발전이라는 본래 취지를 살려야 한다. 서울이 나빠서가 아니라 충분히
발전했으므로 중부권을 개발하자는 논리에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공주ㆍ연기는 어디까지나 행정수도란 점이 희석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풍수지리적 조언을 하자면 먼저 대통령이 북향으로 앉기를 권한다. 언젠가는 통일 수도를 정해야 할 것이고, 그런 뒤 강 건너가
고토인 의주 정도로 바짝 다가앉아 또 다시 북쪽을 바라볼 생각을 하면 된다. 우리에게 가장 급한 것은 통일이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제1의
교역국으로 떠오른 중국을 상대하는 일이다. 혹시 왕은 남면한다는 봉건시대적 안목으로 남쪽이나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신행정수도 예정지를 둘러싸고 나도는 온갖 풍수지리적 평가는 백이면 백 다 북좌남면(北坐南面ㆍ북쪽에 앉아 남쪽을 바라본다)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필자가 말하는 남좌북면(南坐北面)은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신중을 기하기만 하면 발상의 전환도 못할
바가 없다. 도읍지 얘기를 할 때마다 계룡산이 거론되는 이유는 이 일대가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으로 천지의 기운이 소용돌이치는 혈처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산태극 수태극의 힘을 안고 북면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아니겠는가. 신도안은 그 중심에 있으니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지만, 예정지 일대는 가장 역동적인 자리에 해당될 수 있잖은가.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북쪽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이 내가 보는 풍수지리적 소견이다.
풍수지리도 이제는 전략이요, 백년지계요, 정치심리학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재운 작가>
(주간조선
2004-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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