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까지 가져가랄 땐 언제고…”

광개토대왕비 정비했던 오효정 · 오영환 형제 인터뷰… 한국에선 오히려 ‘안기부 조사’까지 당해

“돈 벌 욕심이 있었으면 이 짓거리 안 했을 겁니다. 오직 한민족의 긍지를 드높이고, 자식들에게 교육적 본보기를 남기려는 욕심밖에 없어요.”

오효정(63) 태화건설 회장은 중소기업인으로는 과욕을 부린 듯했다. 광개토대왕비 정비 사업은 그가 가진 재산으로 하기에는 벅찬 것들이었다. “사실 내 형편에 무리한 짓을 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그는 마음만은 누구도 남부럽지 않은 부자로 보였다. 정부나 재벌들도 엄두를 내지 못한 일들을 거뜬히 해치웠기 때문이다. 그는 넓은 중국 땅에 널브러진 고구려 유적의 보전 사업에만 손을 댄 게 아니다.

일제 강점기에 청산리전투 등에서 일제와 싸우다 숨진 5만여명에 이르는 무명용사의 넋을 달래기 위해 ‘항일무명영웅기념비’를 옌볜대 뒷동산에 세웠다. 이 기념비는 아무런 대가 없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추모하고, 후세들에게 통한의 역사를 알려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세운 것이다.

두 형을 북한에 둔 이산가족이기도 한 그는 북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기증받은 대리석으로 기념비에 태극기 모양의 네 방향에 괘를 상징하는 구조물을 설치해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기도 했다.

또 태평양전쟁 때 강제 징용된 사람들과 종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모아 책을 펴내기도 했다. 부모가 지안시에서 사업을 벌인 인연으로 중국 동북지방을 찾았던 오 회장은 1991년 세상을 떠난 어머니 정덕의씨의 유훈이 자신으로 하여금 남이 가지 않는 가시밭길을 걷게 만든 계기라고 말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어머니의 유훈을 잊지 않았다”는 그는 ‘일제의 강점이 두번 다시 이 땅에 일어나서는 안 되며,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나 투철한 애국관과 민족관을 한시도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어머니의 유훈을 담담하게 소개했다.

그는 또 병자호란 때 중국으로 압송된 뒤 청나라 황제에 굴복하지 않고 충절을 지키다 참형된 조선의 세 장군(삼학사)을 추념하는 비석을 남한산성에 옮겨올 구상을 갖고 있다. 이처럼 아무나 하기 힘든 유적지 보전과 역사 복원에 삶의 보람을 찾고 있는 오효정 회장과 그의 동생 오영환(55) 태흥건설 사장을 경남 진주에서 만나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보았다.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시도를 어떻게 보나.

=(오효정/ 이하 오) 통일이 되면 남북한이 우리땅이라고 나설까봐 중국이 미리 쐐기를 박아두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다.

=(오영환/ 이하 영) 광개토대왕비를 정비할 때 중국의 여러 간부들이 고구려 유적은 너희들 거니까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고 분명히 여러 차례 말했다. 지금 이런 일들이 일어날 줄 알았으면 그때 녹음이라도 해둘 걸 잘못했다. 중국 당국이 우리 형제의 공로비를 세우고, 지안시 명예시민증까지 준 것 등도 고구려사가 어디에 귀속하는지를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것 아니냐. 지안시 박물관 당국이 우리에게 건네준 ‘고구려 호태왕비 녹화·미화방안’이라는 문건에도 ‘고구려 민족’이라고 표현해 별도의 나라임을 명시했으며, ‘한국의 오씨 형제가 호태왕비의 녹화 및 미화 사업에 출자하는 것은 대단히 놀랍고 오래도록 기억될 일로서, 이는 자손만대에 복을 주고 무한한 공덕을 쌓을 수 있는 큰 업적’이라고 명기한 바 있다.

-당시 상황을 좀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오) 참 우스운 사람들이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꼴이나 다름없다. 이들은 광개토대왕비에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고구려 역사에 대한 인식도 별로 없었다.

=(영) 오죽하면 어떤 당 간부는 돈만 주면 고구려 유적이 보관되어 있는 창구의 문을 따줄 테니 가장 마음에 드는 것들을 가져가라고 그랬겠느냐. 한때는 국보급 도자기를 사라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유혹까지 하더라. 그랬던 그들이 어떻게 낯 뜨겁게 고구려사를 자기들 역사라고 주장하는지 기가 막힌다.

-중국이 광개토대왕비 등 고구려 유적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해 신청서를 냈다.

=(오) 실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면 우리 형제의 공이 크다. 우리가 수억원을 들여 말끔하게 정비해놓은 게 큰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이전처럼 쓰레기더미로 내버려두었다면 이렇게 빨리 유네스코에 신청할 수 있었겠느냐. 처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이제 여유가 좀 생기니까 욕심이 난 모양이다.

-한국도 뒤늦게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응하느라 야단이다.

=(영) 사실 중국은 학자들을 앞세워 오래 전부터 고구려사를 편입시키기 위해 준비해오지 않았느냐. 이는 말도 안 되는 짓거리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도 이에 맞서 학술적으로 고구려사를 우리의 역사로 입증하는 노력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지 않나 싶다.

=(오) 우리 형제가 광개토대왕비를 정비·보존한 공로를 정부에서 인정하고 널리 알려 후세들이 귀감으로 삼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본다. 이는 우리 형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라나는 청소년들이나 후손들의 교육을 위해서다. 사실 지금까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정부는 도와준 게 별로 없다. 오히려 사업가가 사업은 안 하고 중국에 가서 엉뚱한 일들만 한다고 생각했는지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의심하더라. 옛 안기부에 불려가서 조사도 여러 차례 받았다. 그래서 한때는 많이 방황했다. 이 나라에서 더는 살기 싫다고 생각한 때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재벌들이 그 많은 재산을 갖고 있어도 고구려사 유적을 보존하는 일에 단 한번 눈길이라도 줬느냐. 귀한 내 재산 써가며 그 지저분한 중국x들 상대하는 게 쉬운 일인 줄 아느냐.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달라.

=(오) 우선 복권이라도 당첨돼 목돈이 생긴다면 ‘삼학사’의 비를 다시 찾아 탁본을 떠서라도 옮겨와 그들이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맞서 장렬히 싸웠던 남한산성에 비를 복원하려고 한다. 지금 삼학사 비는 선양의 한 대학 박물관 안에 보관돼 있다. 그 이전에는 한 농가의 마굿간 바람막이로 쓰여지고 있었다.

=(영) 나는 고구려 유적을 보존하는 일이 그토록 어렵고 힘든 일인 줄 알았다면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아버지 같은 형님이 시켜도 안 한다. 사실 형님은 굉장한 구두쇠다. 하지만 민족의 자긍심을 찾거나 후세들에게 교훈이 되는 일이라면 돈을 아까워하지 않고 펑펑 쓴다. 한마디로 못 말리는 분이다.

=(오)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일은 후세 교육이다. 민족에 대한 자긍심과 정확한 역사인식을 갖고, 남북통일에 이바지하는 후세들을 길러내는 일이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나, 유적과 역사의 보존은 북한과 폭넓은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항일 문제도 마찬가지다. 소망이 있다면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이 중국을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우리 손으로 정비한 광개토대왕비나 옌볜의 항일무명용사기념비를 꼭 둘러보도록 권하고 싶다. 역사적 기록을 읽어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후손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느껴보아야 국가관과 애국관이 생기는 게 아니냐.

(한겨레21 2004-2-12)